-정치가 망쳐버린 신수원선 노선-
도면을 받아든 정치인들이 신났다. 북수원역 일대에는 ‘박종희’ ‘이찬열’ ‘김상민’이란 정치 현수막이 내걸렸다. 3㎞짜리 ‘이웃 동네’에는 ‘이상일’이라는 현수막이, 영통에는 ‘박광온’이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SNS도 난리다. 저마다 공치사(功致辭)가 한창이다. 유일호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은 빠지지 않는 영웅담이다. 하나같이 ‘당초 없던 역사를 내가 장관에 부탁해서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는 판단력 좋은 기자였고, 계산 빠른 사업가였고, 정의감 넘치는 운동가였다. 기자였다면 ‘정치로 누더기 된 신수원선’이라고 썼을 거고, 사업가였다면 ‘서울행 전철의 사업성 상실’이라고 했을 거고, 운동가였다면 ‘미래 교통 망친 정치인 반성하라’고 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저러고 있다. 왕창 늘어난-그래서 사업 착수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미친 계획을 보며 ‘경축’이라 선동하고 있다.
현수막을 보는 시민이 저마다 한 소리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잊어버리기엔 너무 가까운 분당선의 추억이 있다.
첫 구간 완공은 1994년이었다. 수원 구간 완공까지 19년 걸렸다. 그 기간을 보고만 있을 정치가 아니다. 너도나도 경유역과 노선 확충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늘어났고 결국 36개 역사가 생겼다. 서울에서 수원역까지 총거리는 53㎞다. 1.47㎞마다 하나씩 만들어진 셈이다. 속도를 낼래야 낼 수가 없다. 달릴만하면 서는 기차다. 그렇게 분당선은 오늘도 버스로 50분 갈 길을 86분 걸려 가고 있다.
전체 시민의 피해는 둘째다. 직격탄은 경유역 동네로 떨어졌다. 영통이 그랬다. 개통만 되면 집값이 오를 거라고 했다. 서울 손님들이 왕창 오면 장사가 잘 될 거라고 했다. 기대 속에 2012년 12월 개통했다. 그런데 반나절도 안돼 실망이 쏟아졌다. 전철 노선도에 빼곡한 경유역을 본 뒤 주민들이 ‘서울 갈 수 없는 전철’이라고 결론냈다. 결국 ‘환영’ 현수막보다 먼저 떨어진 것은 집값이었다.
그렇다고 어찌해볼 도리도 없다. 경유역을 뺐을 수도 없고 노선을 펼 수도 없다. 36개나 되는 경유역이든 86분이나 걸리는 시간이든 50년쯤은 그냥 참고 살아야 할 듯 보인다. 정치가 한번 들쑤신 철도교통의 폐해가 이렇게 길면서도 무섭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을 벌이려 한다. 그때의 1.47㎞로는 부족했던지 이번엔 1㎞에 하나씩 역사를 세우자고 한다. 옆 동네 안마당까지 철길을 대자고 한다.
이건 철도 교통이 아니다.
막아야 한다. 신수원선엔 아직 기회가 있다. 역사와 노선 변경을 촉구하면 된다. 북수원역, 장안구청역, 월드컵역을 하나로 줄이자고 하면 된다. 법원 삼거리역, 원천역, 영통역도 통폐합하자고 하면 된다. ‘이웃 동네’로 끌고 갈 노선도 돈 없으면 1차 사업에서 빼자고 하면 된다. 장안구 주민에게 돌 맞고, 영통 주민에게 벽돌 맞고, ‘이웃 동네’ 주민에게 멱살 잡힐 일이다. 그렇더라도 해야 한다.
철도교통이 뭔가. 2014년 타당성 재조사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인덕원~수원 복선전철 건설사업은 수도권 서남부 지역과 서울시 동남부 지역의 광역 교통기능 확충을 통하여 대중교통 서비스의 개선 및 대중교통 이용률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이다.’ 분명히 ‘광역 교통 기능’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시내버스 교통 기능’을 내놨다. 무책임한 정치와 무원칙한 행정이 빚은 탈선(脫線)이다.
이걸 원래 목적대로 돌려야 한다. 그게 안양도 살고, 수원도 살고, 동탄도 사는 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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