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시, 설악산 오색탐방안내소 앞. 날이 환하게 밝기 전인데 대청봉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이다. 등산화 끈을 다시 매고 장비를 점검하고 설악산안내도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분주하다. 오색은 대청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다.
08시, 설악폭포 부근. 안내소를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산마루는 보일 기미조차 없다. 땅만 쳐다보고 돌멩이를 밟고 기어서 오른다. 울긋불긋 단풍잎, 노랗게 물든 신갈 잎 사이로 따뜻한 햇살을 비추고 가끔 몰아치는 강풍에 아름드리 전나무와 사스레나무가 쓰러질 듯 흔들리지만 더 이상 감탄할 기운이 없다.
변호사들 중에서 케이블카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도 있다. 잠시 쉬는데 할머니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지덕행이니 무량화니 이름표를 보니 대청봉 넘어 봉정암까지 가는 보살님들이다. 어떤 보살님은 미역을 또 어떤 보살님은 쌀을, 모두 등에는 한 짐씩 지고 오른다.
11시, 드디어 대청봉. 바람이 분다. 대청봉에 올라서기 전 두겹세겹 옷을 껴입고 바람막이까지 입었는데도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대청봉 표지석과 인증샷을 찍기 위해 수십m 줄지어 선 등산객들은 요지부동이다. 4시간 천신만고 끝에 올라왔는데 칼바람 1시간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간신히 설악산지키기 국민소송인모집 펼침막을 펴고 설악산 산양 옷을 입은 변호사들이 외친다. ‘설악산케이블카 반대한다! 설악산국립공원 지켜내자!’
12시, 양지바른 곳을 찾다. 저만치 중청대피소가 내려다보이고 울긋불긋 단풍과 눈잣나무숲 사이로 하얀 속살을 드러낸 등산로가 보인다. 하지만 오색으로 하산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청봉 근처 양지바른 곳을 찾는다. 등산로 경계 줄을 넘어 바람이 뜸하고 햇볕 잘 드는 곳에 앉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 잡고 식사중이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그곳은 들어가면 안된다고. 옆을 보니 멸종위기식물보호와 훼손지복원 국립공원특별보호구 안내판이 서있다.
16시, 후들후들 다리가 풀려 간신히 내려오다.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푼다. 변호사들에게 대청봉에 올라갔다오는 게 이렇게 힘든데 지금도 설악산케이블카를 반대하냐고 묻는다. 변호사들은 답한다, 힘들었기 때문에 정상의 경치가 더욱 좋았고 설악산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고, 설악산은 사람들의 유원지가 아니라 우리나라 야생동식물을 위한 단 1% 공간으로 꼭 보전해야 한다고, 한민족 정신의 상징인 백두대간 등허리 설악산에 케이블카 쇠말뚝은 안된다고. 변호사들이 또 웃으며 말한다,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다시 대청봉에 올라가진 않을 것이라고. 18시, 서울로 출발하다.
양양군은 자연환경보호, 지역경제활성화, 사회적약자들을 위해 오색케이블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청봉에 오르고 쉽게 대청봉에 올랐던 사람들은 더 빠르게 떠나버린다. 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설악산케이블카가 아니라 편안하고 이용가능한 대중교통이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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