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가면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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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면을 쓰고 자유로웠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복면가왕’에 출연했던 한 가수가 가면을 벗은 뒤에 한 말이다. 그동안은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이나 표정에 신경이 쓰여서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는데, 가면을 쓰니 불안한 마음과 무대 공포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가면은 가짜 얼굴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 위치할 수밖에 된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관계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기도 하고 사회적 상황에 어울리는 처신과 역할이 사회적 신분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쓰게 된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융(Jung)은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투사된 성격’을 고대 그리스의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말인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여러 형태의 얼굴이다. 융은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아와는 다르며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하고 자신을 은폐시키려 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와 갈등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융의 이론은 가면만들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감정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억압된 분노를 해소시키는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아예 참가자 전원이 가면을 쓰고 벌이는 축제는 좀 더 확장된 의미의 집단적 치료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가면 축제다. 중세의 엄격한 계급 구조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피지배층, 농노나 하인들은 축제 기간 동안에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해서 왕도 되고 귀족도 되어 억눌렸던 내면의 꿈과 욕망을 분출하며 불만과 억압을 다소간 해소할 수 있었다.

 

필리핀의 마스카라 페스티벌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매우 의미 있는 가면의 축제다. 1980년 사탕수수 가격 폭락으로 인한 바콜로드 시 경제위기와 7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MV 돈 후안’ 호의 침몰 사고로 침체된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응원의 의미로 시작되었는데, 대중을 뜻하는 영어 단어 ‘Mass‘와 스페인어로 얼굴을 뜻하는 ‘Kara’를 합한 ‘마스카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국민적 역경과 슬픔을 미소가면으로 이겨낸 필리핀 바콜로드 시민의 의지가 참 아름답다.

지금은 필리핀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축제 중 하나로 매년 필리핀 전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축제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웃는 얼굴의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갈아입고 삶의 축제를 만끽한다.

 

우리에게도 오랜 전통을 가진 가면의 축제들이 있다. 안동 하회 별신굿 탈놀이를 비롯하여 지역마다 전승되고 있는 각종 탈놀이들이다. 이들 탈놀이들 역시 기득권, 지도층들의 위선 및 허위의식과 사회제도의 문제점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집단 에너지를 만들어 내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온통 축제의 열기로 난리다.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러나 대부분 진짜 축제는 없고 어설픈 관 주도형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민과 지역민들이 꿈꾸고 열망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한바탕 집단 신명의 ‘가면의 축제’가 곳곳에서 생겨났으면 좋겠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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