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장무경 미소찾기 시니어뮤지컬 봉사단장

황혼은 마지막 열정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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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은 청춘을 산다. 그 꿈에 열정과 희망, 도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테다.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을 은퇴 이후 펼치는 72살 늦깎이 뮤지컬배우 장무경씨는 그래서 청춘이다. 

3년째 ‘남양주시 노인복지관 미소찾기 시니어뮤지컬 봉사단’ 단장으로 활동하는 그에게 노래와 연극은 막이 내린 무대에 울려 퍼진 앙코르처럼 그의 삶을 다시 불러냈다. 

코스모스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9월 초순. 멋스러운 베레모를 쓰고 남양주시 도농합창단 연습실에 나타난 그의 양 귀에 꽂힌 헤드폰에서 나지막하게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노래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청춘 

“어릴 적부터 워낙 노래를 좋아했어요. 삶은 노래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유난히 끼가 많았던 장 씨였다. 

노래와 글을 좋아했던 소년. 가수의 꿈도 꿨지만, 먹고사는 게 급했다.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터전에서 10대를 보냈다. 야간대학으로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다니며 낮에는 한국전력공사 수금원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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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 뮤지컬 배우로 인생 2막을 연 ‘미소찾기 시니어 봉사단’ 장무경 단장이 공원 산책을 하며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남들처럼, 그렇게 집안과 동생들을 돌봤다. 군대 생활을 끝낸 후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지만, 온몸으로 시대와 싸워야 했다. 

장 씨는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근로기준법 보장을 외쳤다.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1960년대 후반이었다. 살벌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겁도 없이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 1인 시위도 벌였다. 

서슬 퍼렇던 시간이 흐르고 장 씨의 삶에 사랑이 찾아왔다. 노동운동을 정리한 후 1972년, 서른 살에 부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가정을 꾸리며 착실하게 살던 중에도 노래에 대한 열망은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1999년 1월, 용기를 내어 전국노래자랑에 나섰다.

쉰다섯의 나이에 강산애의 ‘라구요’를 불러 우수상을 차지했다. 동네에서는 일약 스타가 됐지만, 가장이었기에 쉽사리 꿈에 대한 얘기는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평범을 삶을 살던 장 씨는 지역 케이블 회사에서 일하다 은퇴를 했다. 

2003년, 60세였다. 회사를 두 번 옮긴 이력과 약간의 재산이 그의 인생에 남았다. “손을 놓고 보니 헛헛하더라고요. 어릴 때 못했던 거, 좋아했던 거 이제 내가 해도 되지 않나. 내 꿈을 위해 살아도 되지 않나….” 

젊은 시절 접어놓은 꿈 황혼에 피어난 새로운 인생 

찾아간 곳은 서울 글로리아 합창단이었다. 그렇게 꿈꿨던 노래를 제대로 불러보자는 심산이었다. 은퇴 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인정도 잠시 다녔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보내기 아까웠다. 아직 무언가 사회를 위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았다고 여겼다. 합창단에서 그의 노래 실력은 여전히 빛을 발했다. 

노래를 실컷 부르니 다시 인생에 봄날이 찾아오는 듯했다. 2012년, 그의 인생에 뮤지컬이 새로운 꿈으로 스며들었다. 남양주시 노인복지관에서 노인의 날 기념공연 위해 시니어뮤지컬 활동을 할 60세 이상의 단원을 오디션을 통해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연기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장 씨는 도전했다. “그때 나이가 예순아홉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선뜻할 생각을 했는지 믿기지 않아.”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삶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은퇴한 평균 72세의 노인 단원 20명을 이끄는 단장도 맡았다. 평생 해온 일도, 살아온 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해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

 

첫 작품인 ‘미워도 다시 한 번’을 공연하려고 2개월간 맹연습을 했다. 장 씨의 역할은 국밥집을 운영하는 ‘세득이’였다. 

드디어 2012년 10월 무대에 오른 장 씨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혼자 살면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역할인데, 가게에 버려진 핏덩이를 발견하고 20년간 애지중지 키우죠.

그런데 생모가 병을 얻어서 찾아온 거예요. 그 순간 무대라는 걸 잊었어. 나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며 울었지.” 이후 장 씨의 뮤지컬 인생이 시작됐다.

무대와의 사랑에 빠져… 인생은 언제나 절찬리 상영 중 

일흔을 넘긴 나이에 대본 외우랴, 율동 익히랴 힘들 법도 하지만, 그의 열정은 끝이 없다. 지난 2013년 11월 첫선을 보인 ‘몽춘이야기’는 연출자와 옥신각신하며 그의 각색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이다. 

완성된 대본에 기존 악극에서 볼 수 없었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기성 가수인 나훈아·최백호의 트로트까지 접목해 새로운 재미를 더했다. 결국, 2015년 4월 출전한 제7회 거창실버 연극제에서 미소찾기 시니어뮤지컬봉사단은 ‘몽춘이야기’로 또 한 번 전국종합은상, 종합연기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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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경 단장이 단원들 앞에서 노래 연습을 보이고 있다
뮤지컬 단장으로서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 평균 나이 72세의 단원들을 이끌다 보니 혹여나 공연을 앞두고 누가 아프진 않을까, 빠지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루고 싶은 일도 많다 보니 장 씨의 역할도 한둘이 아니다. 내년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 공연도 계획했다. 뮤지컬단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픈 욕심도 생겼다.

“단 한 번도 연기를,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적 없던 내가 72살인 지금 하고 있어요. 할 수 있는 한 어디든 끝까지 찾아가서 관객들에게 즐거운 무대를 선보일 겁니다. 당장은 무대에서 조금 더 세련된 율동을 하고 싶네요.(하하)”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일흔을 넘긴 노인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춘향이를 보고 사랑에 빠지듯, 무대와의 사랑에 흠뻑 빠진 이팔청춘 이몽룡의 모습만이 남았다. 

글=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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