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아들과 용인 아들 사이에 아버지의 혼백을 서로 모시겠다고 분쟁이 일어났다. 명관으로 이름난 진천 군수에게 송사를 하게 되었다. “살아서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군수가 묻자 아들들이 “진천서 살았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군수는 “그럼 생거진천했으니 사거용인해라…」. 용인군지에 전해내려오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의 유래다. 전설만은 아니다. 예부터도 용인은 ‘명당’ 자리가 많은 곳으로 정평 있다. ▶1997년 10월 8일. 국감장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가족묘지 논란이 불거졌다.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이 ‘묘지가 법정 면적을 초과했다’며 공격했고, 국민회의 조찬형 의원이 ‘여기가 묘지 감사장이냐’고 맞받았다. 1995년을 전후해 조성한 김 총재의 부모 등 가족 묘지 3기를 두고 벌인 논쟁이었다. 김 총재는 두어 달 뒤 선거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용인시(시장 윤병희)가 이 문제에 과감히(?) 나섰다. 이틀 뒤인 10월 10일, 김대중 총재의 장남 홍업씨를 산림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이듬해 7월 8일 윤병희 용인시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건설업자에게 돈을 받은 혐의였다. 수사를 한 곳은 관할 수원지검이 아니라 서울지검 특수부였다. 수사도 강도 높게 이어져 뇌물 액수는 처음 5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늘어났다. 법원도 징역 6년에 추징금 2억원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그즈음 지역 정가에서는 ‘괘씸죄’라는 말과 ‘묘지의 저주’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 후 용인시장에 오른 이들이 모두 사법처리됐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2대 시장이 징역 3년(뇌물수수), 3대 시장이 징역 1년(뇌물수수), 4대 시장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인사비리)으로 처벌됐다. 그리고 엊그제 5대 시장(2010~2014)마저 본인의 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구속됐다. 민선 20년 동안의 전임 시장 전원이 사법처리되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개발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용인 시장 잔혹사’를 설명하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개발붐이 일었던 지역은 도내 다른 곳에도 수두룩하다. 또 4대 시장의 혐의는 개발비리와 무관한 인사비리였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묘지의 저주’다. ▶‘○○의 저주’처럼 비과학적이고 부질없는 말도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3대 저주가 있었다. 그 중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는 2004년 풀렸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블랙삭스의 저주’는 2005년 풀렸다. 마지막 남은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도 언젠가 풀릴 게 틀림없다. ‘○○의 저주’란 원래 언젠가 풀릴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말장난이다. 사거용인(死居龍仁)의 명당 용인, 그 천혜의 명소에서 이어지는 ‘묘지의 저주’도 이젠 끝날 때가 됐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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