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주년 소방의 날, 아직도 고달픈 소방관] 하. 치료비 못 받기도 다반사

목숨 걸고 불 끄는데… 다쳐도 ‘자비 치료’

경기도내 일선 소방서 구급대원 A씨는 20년 가까이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심각한 허리 통증을 앓게 됐다.

A소방관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공상처리(공무원이 공무수행 과정에서 입는 부상 등 재해에 대한 보상처리)를 신청했지만, 공무 중 다쳤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해 결국 자비로 수술을 받았다. A씨는 “부상과 공무의 연관성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출동이 잦은 업무의 특성상 어떤 작전에서 어떻게 다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2013년 화재 현장에서 넘어져 어깨를 다친 B소방관은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 공상처리 신청을 포기했다. B소방관은 “공상처리를 신청하면 조사위원회에 불려다니며 사고경위 등을 설명해야 하는데, 훗날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찜질로 통증을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소방관들이 재난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음에도, 공상처리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은데다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 자비로 치료받는 일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이 지난 9월 전국 소방공무원 6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부상 당한 적이 있는 소방관은 120명이었으며, 이중 99명(80%)이 자비로 부상을 치료했다고 응답했다.

 

자비 처리 이유로는 ‘절차가 복잡해서’가 27%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공상처리 신청 가능한 부상 기준 부재’가 26%, ‘행정평가상 불이익’ 17% 등 순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도내 소방관 6천여명 중 공상처리된 인원은 지난 2013년 68명, 지난해 67명, 올해 63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는 안전사고 및 순직을 줄인다는 이유로 지난 7월 각 시·도소방본부에 공문을 전달, 각 관서 평가 시 안전사고 및 사고순직에 대해 감점하도록 했다가 공상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문제 역시 심각하다. C소방관은 “남들이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사고 현장을 수시로 보는 만큼 PTSD에 노출되기 쉽지만 치료 시 기록이 남아 인사 불이익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료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PTSD로 병원 치료를 받는 도내 소방관은 매년 200여명에 그치고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부상 가능성이 높은 소방관들의 업무 환경을 고려한 공상처리 기준이 필요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소방관은 의무적으로 PTSD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우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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