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이 누구십니까.” 모자를 눌러쓴 낯선 이가 편집국에 들어섰다. 나를 찾고 있었다. 내게 건넨 것은 쪽지였다. 심재덕 수원시장이 보낸 것이었다. 48시간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그였다. 노트를 찢어 쓴 쪽지 한 면에 억울함이 빼곡했다. 또렷이 기억나는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 ‘나는 돈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때 모자를 눌러 쓴 이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심 시장은 그날 구속됐다. 건설업체에서 돈을 받은 혐의였다. 몇 달 뒤 1심 판결도 유죄였다. 7개월 만에 보석(保釋)으로 석방됐지만, 다들 시장직은 끝났다고 봤다. 그런데 그가 2002년 6월 선거에 다시 나섰다. ‘나는 죄가 없다. 시장으로 일하고 싶다’며 유세장을 누볐다. 상대 후보의 공세는 가혹했다. ‘심재덕 후보는 당선되더라도 시장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결과는 낙선. 무죄가 확정됐을 때 그는 더 이상 시장이 아니었다. ▶야인이 된 그의 명예를 회복시킨 건 시민이었다. 2년 뒤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남들 부러워하는 중앙 정치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인계동의 한 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일 때다. “조사 도중에 병원에 후송됐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쪽지를 복도로 던졌어. 누가 전달했는지는 나도 몰라.”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국회의원 배지가 명예회복이 될 순 없어.’ 수원시장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더 이상의 시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 시장에겐 분명 국회의원보다 시장이 컸다. 정당의 유혹에도 무소속을 고집했다. 스스로 ‘수원시민의 당’이라고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늘 국회의원보다 상석(上席)을 고집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이 곤혹을 치렀다. 시청을 방문한 경기도지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시정(市政) 설명을 부시장에게 시켰다가 두고두고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수원시민의 자긍심만큼은 그때가 높았다. ‘문화시장’이란 말과 함께 ‘문화시민’이란 말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요사이 그런 시장을 보기 어렵다. 틈만 나면 ‘여의도’를 기웃거린다. 때론 3선 때문에라는 이유를, 때론 큰일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심지어 임기도 안 채우고 총선 판에 뛰어들려고 한다. 스스로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짓이다. 말로는 지방 분권을 얘기하면서 행동은 중앙집권을 갈구하는 짓이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려는 시장직. 그것이 고(故) 심재덕 시장에겐 ‘암(癌)’ 앞에 멈춰버린 ‘영원한 시장’에의 꿈이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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