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FC는 어떤가. 선수단 몸값이라야 23억원이 전부다. 그나마 승리수당까지 다 포함했을 때 얘기다. 이 돈으로 감독과 코치, 선수 32명이 연봉을 받는다. 1인 평균 9천만원 정도다. 이 속에도 차이는 있다. 9천만원마저 꿈인 선수가 있다. 번외(番外)지명자들의 연봉은 2천만~2천400만원이다. 월급으로 보면 160만~200만원이다. 시가 꾸려가는 살림이니 이럴 수밖에 없다. 시비(市費) 40억과 연맹 지원금 10억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
전용 연습 구장은 꿈도 못 꾼다. 여기산 시민 공원이 연습장이다. 축구장으로 쓸 수 없는 인조잔디다. 툭하면 화상을 입고, 발목이 돌아간-골절- 선수도 한둘이 아니다. 종합운동장은 말뿐인 홈구장이다. 유명 축구인의 축구교실에 보조경기장을 내어준 지 오래다. 선수들은 월드컵 경기장 옆 보조 구장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기회는 좀처럼 없다. 공원에서 운동하고, 짐 메고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수원 FC 선수들이다.
그런 수원 FC가 일을 냈다. 28일 달구벌로 대구 FC를 찾아갔다. 연간 예산 140억원을 쓰는 팀이다. 선수단 몸값만 70~8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죽지 않았다. 스타도 없고 선수층도 얇지만 정신력으로 뛰었다. 2대 1, 승리였다. 한국에서 순수 2부 리그 출발팀이 1부 리그에 승격한 역사는 없다. 그 새로운 역사를 만들 자격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휴일을 마다 않고 달려간 수원시민들의 함성이 대구 경기장을 뒤덮었다.
흔히들 칼레의 기적을 얘기한다.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컵 결승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프로팀 낭트와 맞선 상대는 ‘라싱 유니온 FC 칼레’였다. 장식품 가게 종업원, 청소 용역회사 직원, 난방기구 수리공, 부두 노동자들이 선수였다. 4부 리그 소속팀이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패했지만 프랑스 국민은 이미 칼레의 편이었다. 경기를 본 시라크 대통령도 “낭트는 결과에서 이겼고 칼레는 정신에서 이겼다”고 격려했다.
칼레 시는 가난했다. 도버해협에 접한 인구 7만5천명의 항구도시였다. 인구의 절반이 연 수입 5만 프랑도 못 벌었다. 그 칼레 시가 두 달여 동안 프랑스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16강전, 8강전, 4강전이 치러지며 모두를 칼레 시민으로 만들었다. 결승에서 패해 눈물을 흘리는 칼레 선수들에겐 세계 축구팬이 박수를 보냈다. 이제 칼레는 기적의 성지다. 칼레 정신은 불굴의 정신의 다른 표현이다. 축구가 칼레 시민을 그렇게 만들었다.
수원 FC의 선전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겠다. 수원은 칼레처럼 가난하지 않다. 40억을 투자해 선수단을 살필 수 있는 도시다. 수원 FC 선수들도 약하지 않다. 눈발 속에 90분을 뛰고도 운동장을 펄펄 뛸 기운이 남아돈다. 번외지명이라고 부끄러워하는 선수도 없다. 번외지명자 정기운은 이제 상대 선수들을 벌벌 떨게 하는 최고의 공격수다. 마땅히 받아 들 결과다. 단내나도록 뛰어온 선수들에게 주어진 ‘아직도 미진한 보상’일 뿐이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연습장을 전전하는 그들을 챙겨줄 곳이 없었다. 골을 넣고 달려오는 그들을 맞아줄 관중도 없었다. 시민이 만들어 놓고도 그들을 기억하는 시민은 없었다. 그들이 새로운 한국 축구사를 써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 오늘, 그들의 마지막 고비 1차전이 벌어진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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