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좀비’는 육체는 살아 움직이지만, 영혼은 죽어 있는 괴물이다.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지난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Day of The Dead)’에 첫 등장한 좀비는 전자의 경우다.
영화는 무덤을 박차고 나온 시체(좀비)들의 공격을 받은 인간의 절망과 공포를 다뤘다. 2013년 국내 개봉된 ‘웜 바디스(Warm Bodies)’는 좀비 소년과 인간 소녀가 만나 사랑을 키운다는 로맨스 영화다. 후자의 좀비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훈남 좀비로 변해 국내 좀비 열풍이 불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했던 좀비가 최근 경제계를 위협하고 있다.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못내 건물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가며 버티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비단 중소기업만은 아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회계연도 기준 국내 30대 그룹의 1천50개 계열사(금융회사 제외)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이 되지 않는 곳이 236개(22.5%)나 됐다. 1 미만은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보다도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190개 공공기관 중에서는 40개사(21.1%)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82개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15곳(18.5%)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기업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GDP 대비 우리나라 비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은 106%로, 선진국의 90%를 크게 웃돌았다. 우리 기업이 내년에 갚아야 할 빚은 210억 달러로 18개 신흥국 중 가장 많았다.
▶문제는 좀비가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는 것처럼 좀비 기업이 성장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데 있다. 기업을 유지하려고 금융권 등에서 끊임없이 자금 지원을 받다 보면,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제대로 된 금융지원을 받지 못해 기업환경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야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적어 버틸 수 있었지만, 전망대로 이달 중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후폭풍을 피하기 어렵다. 우량기업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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