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자선냄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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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리면 12월이구나, 또 한해가 가는구나를 실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한국구세군은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 시종식을 갖고 12월 한달 동안 자선냄비 성금모금에 들어갔다. 

시종식에서 배우 김수현은 자선냄비에 사랑의 쌀 1004포(11.1톤)를 기부하며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구세군의 올해 모금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2억원이 늘어난 70억원이다. 자선냄비도 지난해보다 100개 많은 450개를 전국 거리에 설치했다.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배가 좌초하자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가 거리에 쇠솥을 걸고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문구로 난민을 위한 기금을 모은 게 시초다. 이후 전 세계로 퍼진 자선냄비는 12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는 이웃사랑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선 1928년 12월 한국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명동과 종로 등 서울시내 20여 곳에 자선냄비를 설치해 812원을 모금한 것이 처음이다. 자선냄비 활동은 지금까지 87년째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는 대신 현장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해 즉석 기부를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상품권이나 로또 복권을 넣기도 하고, 금반지를 넣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술에 취해 모금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에게 시비를 걸거나, 시민들이 낸 기부금을 슬쩍하는 경우도 있다. 3년 전엔 한 청년이 길거리의 자선냄비를 들고 도망간 사례가 있다. 그는 공중화장실에서 드라이버로 냄비를 뜯어 20만원을 꺼내 갔다가 다른 범죄혐의와 함께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자선냄비를 넘어뜨리고 발로 밟은 60세 여성에게 재물손괴 혐의로 지난달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 여성은 종소리가 시끄러워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노숙인들이 자원봉사자에게 와서 “정말 불우한 이웃은 나다. 날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거액 기부보다는 보통 시민들의 작은 정성과 사랑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자선냄비가 끓을 수 있도록 작은 정성을 보태보자. 내 맘이 훈훈해질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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