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한 줄 정성 담아… 손 편지에 행복 한가득… ‘느린 우체통’이 전하는 오랜 감동

수개월~1년 후 수신자에게 보내져 ‘빠른 시대’ 속 되찾은 기다림의 미학
사라져가는 편지문화 활성화 기대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써내려간 손 편지에 담긴 마음을 ‘느린 우체통’으로 천천히 전해봅니다”

 

9일 오후 1시께 화성시 용주사 앞. 이제 막 스무살이 되는 딸을 위해 멀리서 이곳을 찾아왔다는 L씨(48·여)가 느린 우체통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L씨는 그동안 감춰뒀던 속마음을 편지에 정성스레 풀어내기 시작했다. 

L씨는 “어느새 훌쩍 자라 한 달 뒤면 스무살이 되는 딸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고민하다 이곳을 찾게 됐다”면서 “성인이 되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와 그동안 잘 자라줘 고맙다는 엄마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잘 전달되지 않고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아 직접 손 편지를 썼다. 

몇 달 뒤 엄마가 직접 쓴 편지를 받게 되면 아이의 감동이 더욱 클 것 같다”며 기대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안부나 자신의 일상을 수초 만에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에, 정성 가득한 손 편지를 작성해 3개월, 6개월, 1년 후 수신자에게 발송하는 느린 우체통이 우리의 잃었던 감성을 되살리고 있다.

지난 2009년 인천 영종대교에 처음 설치된 느린 우체통은 양평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와 성남 책테마파크, 화성 용주사 등 경인지역 관광명소 10여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매년 1만5천여통의 편지가 수거될 정도로 가장 인기를 끄는 인천 영종대교 느린 우체통에 넣은 편지는 1년 뒤 수신자에게 보내진다. 또 양평 민물고기 생태학습관과 성남 책 테마파크의 느린 우체통도 매년 각각 1천통, 3천통의 편지를 발송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경인지방우정청은 손 편지로 전하는 감성과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느린 우체통을 확대 설치해 사라져가는 편지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인우정청 관계자는 “빠름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조금은 느리지만 직접 쓴 편지로 감성을 전달할 수 있어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면서 “느린 우체통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내년에는 수원화성 등 도내 명소에 추가로 설치해 사라져 가는 편지 문화를 다시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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