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안전먹거리… 친환경+ICT서 길을 찾다’
축사시설이 한 곳 들어설 때마다 지역주민과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허다하다.
서두석 대한한돈협회 전라남도협의회장은 “국내 축산업은 축사에서 나는 냄새로 인한 지역민의 반발, 거리제한 규제, 액비화시설 확충 등 분뇨 환경과 관련된 어려움이 많다”며 “외국에서는 축산업을 식량산업으로 생각해 산업 보호 측면에서 대응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어려운 국내 축산업 현실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한국농업의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는 농가를 찾아가봤다.
찾아간 농가에서는 가축분뇨 냄새를 자기들만의 비법으로 조금이나마 줄이고, 친환경 축산으로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들은 국내 1%에 드는 특수한 경우다. 드넓은 초지나 막대한 자본이 없는 대부분의 농가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하지만, 1%에 속하는 농가들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위기의 파고가 몰아닥치는 축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청보리한우법인, 체계적 관리 ‘명품 한우’ 생산
청보리한우영농법인(대표 유경환ㆍ전남 영광군 법성면)은 총 1만2천14㎡의 규모 축사 5동에서 785두의 소를 키우고 있다. 지난 1980년부터 한우 사육을 시작한 유 대표는 2003년부터 한우 사육환경을 모조리 바꿨다. 동물복지를 고려한 친환경 축산만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축산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19만8천347㎡의 초지를 사들여 개폐식 축사를 두 동을 건축했다. 또 개체별 개량 목표를 설정해 우수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 개체 관리 등 체계적인 개량을 통해 생산된 송아지를 방목해 황토에서 자란 신선한 풀을 뜯게 했다. 무엇보다 소들이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사료에 집중했다.
식이 섬유소 성분이 쌀보다 5배 더 많고 베타글루칸 성분이 들어 있어 나쁜 지방 축적 억제 및 면역증강에 효과가 좋은 친환경 청보리를 먹이기 시작했다.
드넓은 목장에 자유롭게 소를 방목한다. 축사도 개폐식으로 설계돼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고 분뇨는 별도 처리해 질병의 우려도 적다. 자가 TMR 시설을 갖춰 자연순화농법으로 재배한 청보리 사료와 발효한 양질의 사료를 먹이자 결과는 놀라웠다. 번식 분만 간격이 360일에서 340일까지 단축됐고 송아지 폐사나 질병 역시 줄어들었다.
넓은 초지에서 소들을 키우자 사료비가 36% 줄었다. 배합사료만 먹인 일반 한우보다 안전성이 높고 1등급 출현율도 80% 이상에 이르렀다. 2005년엔 청보리한우상표를 등록하고 2009년 HACCP 인증 획득,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환경친화축산농장으로 지정됐다.
안전하고 품질 좋은 먹을거리라는 소문이 나자 소비자, 시장 모두 인정했다. 이곳에서 나간 한우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영등포점, 죽산점, 광주점 등에 입점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유 대표는 “수입 쇠고기, 사료 값 등으로 어렵지만, 초지 방목과 청보리사료 급여로 오히려 사료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면서 “저렴한 수입 쇠고기에 경쟁력을 갖추고자 유기 축산으로 전향해 해외에 수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돼지 사료를 주고 모든 시스템을 관리한다? 공상과학에서나 나올 법한 이 기술은 현재 국내 농가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는 오늘날의 얘기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의 애니포크영농조합법인(대표 김영용ㆍ전남 영광군 불갑면)은 축사의 모든 시설이 IT 설비와 연결돼 있다. 인터넷 환경만 갖춰져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축사 내부 온도나 습도 조절 등을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다.
지난달 찾아간 애니포크의 통신제어실에 들어서자 6대의 모니터를 통해 돈사 내부가 훤히 보였다. 돼지우리에서는 돼지들이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뒹굴고 있거나, 놀이기구로 마련해놓은 밧줄을 씹어먹으며 놀고 있었다. 김 대표가 컴퓨터의 3번 스테이션을 누르자 할당된 양만큼의 사료 1번이 정확하게 2.1㎏ 쏟아져 나왔다.
이곳에서는 4대의 컴퓨터가 축사 전체 시스템을 제어한다. 품종에 맞게 미리 선별해 놓은 사육 레시피를 지정해 놓으면, 시간에 맞춰 액상급여기가 사료를 배분한다. 사료량이나 시간, 장소 등 모든 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자동 시스템이다.
20년 전 귀농한 김 대표는 현재 축사 5동(1만 1,027㎡ㆍ무창돈사)에서 LYD(랜드레이스+요크셔)+두록저지 품종의 돼지 1만5천두를 키운다. 그가 축사에 이러한 ICT 기술을 접목한 것은 바로 경쟁력 때문이었다. 지난 2010년 한ㆍEU FTA가 체결되자 실의에 빠졌던 유 대표는 대ㆍ 중견기업에 맞서는 것은 물론 FTA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기 위기 위해 유럽 선진 기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2년간 덴마크, 호주 등 100여곳의 선진 농장을 다녀와 벤치마킹하며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첨단기술이 구축된 축사를 만들었다. 기술을 도입한 이후 생산성은 오르고, 인건비와 질병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은 줄게 됐다. 각 돼지의 체형에 맞게 적정 사료량을 제공하기 때문에 돼지들의 건강은 물론 사료도 15%가량 절감됐다.
악취 역시 현저하게 줄었다. 복합미생물제를 만들어 사료와 함께 먹이고, 액비순환식 시스템을 도입해 돼지 분뇨를 발효 액비로 만들어 돈사로 흘려보내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이제 축산업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해마다 각종 구제역 등으로 홍역을 앓을 때도 잦고 악취 등으로 국민적 반감이 심하지만, 과학적으로 안전한 축산물을 공급하는 저변이 넓혀져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자연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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