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의 도전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와 K리그 챌린지(2부리그)를 거쳐 클래식(1부리그) 승격의 기적을 일궈낸 수원FC의 스토리도 1등만을 중요시하는 경쟁 사회에서 2등의 ‘반란’, ‘감동’, ‘설움’ 등의 정서가 가미돼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꿈에 그리던 클래식 승격으로 축배를 들어 올린 수원FC 선수들이지만 이들의 이면에는 무명의 설움을 딛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향해 끝까지 질주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클래식 잔류로 끈끈하고 강한 조직력 팬들에 보여줄 것”
수원FC의 ‘맏형’인 김한원(34). 묵묵히 뒤에서 후배들을 뒷받침하며 수원FC의 클래식 승격을 이끈 김한원이지만 그의 축구인생에는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창 시절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렸던 그는 축구 명문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과 달리 대학 입학에 어려움을 겪으며 운동을 그만 두려했다.
축구를 포기하지 말라는 중·고교 은사들의 권유로 세경대에 진학한 김한원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운동에 전념하며 동국대 편입을 제의 받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교측과의 소통부재로 무산돼 방황의 길을 걸었고, 군대나 다녀온 뒤 다른 일을 찾으려한 그에게 뜻하지 않던 희소식이 들려왔다.
해병대에서 축구부를 창단한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축구와 인연이 없었는지 입대 후 축구부 창단이 무산돼 일반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애초에 해병대를 지원하려고 했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평범한 군생활을 이어가던 김한원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내셔널리그 수원시청(수원FC 전신)과의 연습경기를 가진 김한원은 김창겸 당시 수원시청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2004년 제대 후 수원시청에 입단해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다.
“축구선수로서 잘 풀리지 않아 제대 후에는 운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김창겸 감독님께서 함께 해보자고 권유를 하셔서 다시 축구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한 6개월간의 노력 끝에 김한원의 축구 인생에도 빛이 보였다.
2005년 내셔널리그에서 1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른 김한원은 그해 수원시청의 전기리그 우승과 실업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한원은 “축구를 하며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이었다. 군복무 기간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도 운이 따랐고, 많은 분들이 믿어주셨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2005년은 잊을 수가 없는 해”라고 회상했다.
내셔널리그에서의 활약으로 김한원은 많은 프로팀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2006년 우선지명으로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김한원은 발목 부상으로 전반기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후반기 들어 3골ㆍ1도움 등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2007년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이적 후 14경기에 출전하며 무난한 프로생활을 해왔지만, 한 시즌 만에 마음 편히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수원시청으로 되돌아오며 그의 프로 도전기도 막을 내렸다.
그는 “전북에 있을 때 불화가 있었다. 심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원시청으로 돌아왔다. 물론 프로에서의 경험은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꿈에 그리던 프로에서 실업축구로 내려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한원은 다른 많은 구단에서 함께해보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고, 친정팀 수원시청을 지켰다. 2013년 수원시청이 수원FC로 이름을 바꿔 K리그 챌린지에 데뷔한 후에도 그는 철저한 개인관리로 컨디션을 유지하며 공·수에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을 이어갔다.
김한원은 “팀이 챌린지로 전환한 뒤 은퇴전까지는 클래식에 한번 승격해 보자고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룬 것 같다. 내년 시즌 우승을 목표로 두기보다는 클래식 잔류를 통해 수원FC가 조직력이 끈끈하고 강인한 팀이라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상무 입대까지 겹경사…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수원FC의 승리를 이끈 임성택(27)은 올 시즌 클래식 승격과 국군체육부대 합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지난 14일 육군훈련소로 입대한 임성택은 승강PO 포함, 올 시즌 24경기에 나서 10골ㆍ2도움을 기록하며 수원FC의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다.
대전 중앙초 졸업 후 부모의 권유로 1년간 브라질 유학을 다녀온 임성택은 대전 봉산중과 유성생명과학고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고교시절 일찌감치 서울권 대학 진학이 예정돼 마음 편히 운동에 전념했지만, 예정된 대학 진학이 갑작스레 무산돼 테스트를 거쳐 힘겹게 아주대에 입학했다.
아주대 입학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훈련을 쌓아온 임성택은 2학년 때 피로골절로 한 시즌을 뛰지 못한 채 재활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듬해부터 제 컨디션을 찾으며 권역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탄 임성택은 대학 졸업 후 2011년 드래프트 5순위로 K리그 클래식 대구FC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너무 높았다.
“당시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겠다고 하셔서 기다렸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신인답게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것 같다.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선택받았을 때는 뭐든 하면 다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넘쳤는데 험난한 프로의 벽을 실감했다.”
대구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임성택은 2군으로 내려갔고, 전용 훈련장 없이 풋살구장에서 훈련을 하며 미래가 불투명한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한 시즌 만에 팀에서 방출된 그는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했지만 이 역시도 낙방이었다.
방황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아주대시절 은사인 조덕제 감독이었다. 임성택은 2012년 조 감독의 부름을 받아 수원시청 유니폼을 입었지만, 동계훈련 시작과 함께 발목 인대가 끊어졌고, 회복 후 연이어 쇄골뼈가 골절되며 1년을 꼼짝없이 쉴 수밖에 없었다.
“고교시절까지 잔부상 한번 없었는데 대학에서 한 번 부상을 입은 뒤 계속되는 부상에 시달렸다. 2013년에는 시즌 막판 손등이 골절됐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발뒤꿈치를 다쳐 4개월간 뛰질 못했다”고 회상했다.
소속 팀이 2013년 프로축구 챌린지에 데뷔하며 다시한번 K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매년 성장세를 보이며 조 감독의 신임을 얻었고, 올 시즌에는 최고의 활약으로 수원FC의 클래식 승격에 힘을 보탰다.
그는 “2013년 4골, 지난해 6골을 기록했다. 원래 골을 많이 넣는 스타일이 아니라 올 시즌 지난해보다 2골만 더 늘려보자고 결심했는데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팀에 도움이 돼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임성택은 수원FC의 클래식 승격과 함께 두 번의 도전 끝에 국군체육부대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임성택은 “올 시즌 클래식으로 승격한 상무에 가서 수원FC와 한번 맞붙고 싶었지만 규정상 전 소속팀 경기에 출전할 수 없어 아쉽다”면서 “상무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만큼 배운다는 자세로 2년 동안 열심히 군복무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FC가 내년에 다른 팀들에게 연패를 당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스타일을 고수한다며 분명 많은 팬들이 관심을 갖아줄 것”이라며 “2년 후에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홍완식 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