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이 되어버린 ‘고전적 혁명유적지’
8월 18일 아침, 저는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단교(斷橋)위에 서 있었어요. 신연암로드 추진단의 첫 출발지가 단둥(丹東)이어서 그 참에 단교를 찾았던 것이죠.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했던 그 다리는 1911년에 준공되었고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라 명명했으나, 지금은 강 건너 북한 쪽 구간이 아주 정교하게 폭파된 채 을씨년스럽게 남아있을 뿐이었어요.
저는 단교 위로 올라가 다리 끝까지 걸어가서는 강 건너의 북한을 바라보았죠. 마흔 여덟에 눈앞에서 본 북한은 지금까지 학습된 북한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현실의 시간과도 아주 무관한 듯했어요. 이쪽의 현실과 저쪽의 현실 사이를 압록강이 흐르는 것, 오롯하게 그것만이 강력한 현실처럼 보였죠. 강은 두 개의 현실을 나누지 않고 뒤섞어서 서해로 나아갔으니까요.
중국은 단교 위에 최근 사회주의 리얼리즘 기념조형물인
그러나 기념조각의 청동 인물들은 그 자리에 무겁게 굳어서 ‘기념물’이 되었을 뿐 더 이상 연속혁명의 생물은 아니었어요. 그들이 바라보는 철교의 끝은 완전히 끊어져서 건너지 못할 것이었고, 그들 뒤로 바짝 붙어서 위용을 뽐내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거대한 자본주의였으니까요. 펑더화이와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북한에 남았으나 그들의 자리는 ‘고전적 혁명유적지’에 불과했죠.
사회주의 기념 조형물과 그 뒤에 펼쳐진 단둥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역설이었고 카오스였어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의 마른 풍경과 달리 이쪽의 단둥은 기름진 도시의 급성장이 노골적이었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 단교 옆 신 철교 위를 레미콘 차량과 화물차와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서 들고 나더군요. 마치 이제는 북한에 자본주의를 건설하려는 듯 말예요.
그래서일까요? 일순간 펑더화이와 그를 따르는 중공군의 기념조각이 텅 빈 껍데기처럼 가벼워 보이더군요. 펑더화이의 발밑에 새긴 ‘평화를 위하여’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김종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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