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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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이집트 카이로를 이륙하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러시아 에어버스 A-321 여객기가 비행 23분만에 공중폭발하여 22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결국 이 사건이 IS(이슬람 국가) 소행으로 밝혀지자 가장 분노한 것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그는 즉시 시리아에 IS 주요시설, 특히 그들의 자금줄이 되고 있는 석유 시설을 폭격으로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IS가 손을 들고 말았을까? 아니다. IS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꼴을 보며 분노를 삼켜야 하는 푸틴은 ‘힘의 한계’를 느끼면서 새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파리 한 가운데서 IS의 테러로 130명의 사망자와 2백여명의 중상자를 낸 11월 13일의 참사를 겪은 프랑스도 엄청난 규모의 보복을 감행했지만 역시 돌아온 것은 ‘무력감’이다.

 

어쩌면 2015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런 무력감을 화산재처럼 뒤집어쓰고 살았는지 모른다. 세월호 침몰 후 1년 8개월, 우리는 무엇을 했고 무엇이 달라졌나? 두 발을 구르며 몸부림쳤지만 오직 ‘무력감’이었다.

 

지난 봄부터 온 나라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메르스 사태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최첨단의 의료시설과 최고의 의료진으로도 그것을 막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참으로 해괴한 것은 국회선진화법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배웠는데 정작 민주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는 당리당략에 의해 이 카드를 들고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이럴 바에야 굳이 다수당이 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정말 이처럼 국민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준 것은 일찍이 없었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를 도피처로 삼았을 때 역시 우리의 법과 공권력은 화석에서나 볼 수 있는 유니폼에 불과했다.

 

가계빚이 1천조에 이르는데다 취업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20만명의 젊은이들, 그저 길에서라도 어깨가 축쳐진 힘없는 젊은이들을 보면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진다. TV에서 한 젊은이는 19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이었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싸움으로 365일을 보내는 우리 국회! 이렇듯 ‘무력감’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하랴.

 

도대체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큰 선박에는 으레 구명도구와 함께 밧줄로 만든 사다리가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재난을 당했을 때 이 밧줄 사다리는 선원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준다.

 

흔히 옛날부터 선박의 ‘밧줄 사다리’를 ‘야곱의 사다리’라고도 불렀다. 구약 성경에 야곱이 형 에사우의 미움을 받고 광야로 도망쳤는데 하루는 돌베개를 베고 자다 꿈을 꾼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이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꿈이었다. 그 후 이 ‘사다리’는 인간의 ‘돌베개’를 베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구원과 희망을 말해왔고 유명한 화가들의 손을 거쳐 이미지화 되었다.

 

마침 지난 달,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공주 공산성 발굴 현장에서도 1400년이 넘은 사다리가 나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참나무로 정교하게 만든 이 사다리는 큰 행사때 소중하게 쓰여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그렇게 사다리는 방황하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며 꿈이다. 이제 2016년을 맞아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정치권이 뼈를 깎는 각오로 젊은 세대에게 사다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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