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따뜻한 미래] 수원 ‘녹색복지회’

고슬고슬 밥에 정갈한 반찬… 식판가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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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에서 활동 중인 자원봉사자들이 녹색복지회를 찾아 배식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바야흐로 ‘음식’의 시대다.

 

텔레비전을 켜면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음식 프로그램이 빠지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며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은 것은 바로 ‘집밥’이다.

 

집에서 누구나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자취를 하는 학생들, 매일매일 일에 파묻혀 시간에 쫓기며 사는 직장인들에게 집밥은 ‘로망’ 그 자체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쌀밥과 국만 떠올려도 행복해진다.

 

그 로망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자문해본다. 어머니의 집밥이 그리운 시절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주일에 5일은 그 옛날 어머니의 손맛으로 손수 지은 쌀밥과 따뜻한 국, 정성스레 만든 밑반찬으로 오갈 때 없는 노숙인과 홀몸 노인들에게 집밥을 차려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수원 만석공원 야외음악당 앞에 자리한 ‘녹색복지회(회장 이지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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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이 무료급식에 사용할 각종 재료를 다듬고 있다.
■ 1999년부터 무료급식소 운영… 이웃사랑 ‘외길’
지난 1999년 11월 한길봉사회란 이름으로 무료급식소 운영을 시작한 녹색복지회는 수원 무료급식의 산실로 통한다. 

지난해 말까지 이곳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만 52만8천여명에 달한다. 120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을 정해 매일 아침 급식소에 나와 신선한 재료로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인다. 윤기 넘치는 쌀밥이 지어질 무렵부터 급식소 앞마당은 장사진을 이룬다. 

150여명의 어르신들과 노숙인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차례로 줄을 서 기다린다. 배식이 시작되고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식판을 건네받은 노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5년째 이곳에서 사랑의 무료급식을 받는 이철래 할머니(78)는 음식을 받을 때도, 먹을 때도, 다 먹고 식판을 치울 때도 자원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매일 정성스런 집밥을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말 밖에 해줄 수 없어 오히려 미안하다”면서 “이제는 이곳(무료급식소)이 우리집 같고, 여기오면 따뜻한 밥도 먹고 친구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해맑게 웃는다.

■ 때로는 동생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정이 넘치는 ‘사랑방’
녹색복지회에는 수원지역 120명의 ‘줌마 파워단’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나눔 실천을 원하는 모든 이에게 복지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도지사와 시장, 국회의원, 영양사를 꿈꾸는 대학생에서부터 중ㆍ고등학교 학생, 검사장, 은행지점장, 교수, 군인, 소방관, 공무원들까지 각계각층 다양한 이들이 매일 찾아온다. 

이들은 음식 준비부터 배식, 설겆이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급식을 마치면 어르신들의 말벗으로 변신해 때로는 손주처럼, 동생처럼, 자식처럼 노인들을 보살피며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날개 없는 천사를 자처한다.

10개월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박승희씨(25ㆍ공주대 식품영양학과)는 “학기 중에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복지회를 찾아 급식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며 “군대에서 취사병을 해 음식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고, 봉사활동을 할때마다 뿌뜻한 마음이 생기는데다가 어르신들과 대화도 할 수 있어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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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녹색복지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봉사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녹색복지회가 무료급식만 한다면 오산이다. 복지회는 매년 20여차례가 넘는 경로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소외된 어르신들이 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 

또 지난 2004년 7월부터는 영정사진 무료봉사를 통해 1천명이 넘는 어르신들에게 정성스레 만든 액자를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녹색복지회의 5평 남짓한 사무실 한켠에 붙어 있는 헌시(獻詩)가 눈에 들어온다. “전생의 업보인가. 누가 시키지 않은 일. 괜한 어려움 남몰래 많아도. 웬지 기쁘니.…(중략)…나도 모르지만 걷는 발길. 멈추지 못하리.” 지난해 녹색복지회는 ‘자원봉사 1만 시간’ 달성을 기념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은자봉을 수여 받았다. 

‘효행의 도시’ 수원을 대표해 어르신들에게 집밥을 선사하는 녹색복지회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50년 아니 그 이상 홀몸 노인들과 노숙인들의 ‘집밥 녹선생’이 되주길 기대한다 .

김규태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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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지현 녹색복지회 회장

무료급식소와 17년… “마지막까지 어르신 지켜드리고 싶어”

17년째 무료급식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지현 녹색복지회 회장(64)은 변치 않는 모습으로, 나눔의 소중함을 전파해오고 있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수원 무료급식의 산증인’이라고 부른다.

 지난 2007년 제9대 혜경궁 홍씨역으로 선발돼 수원 향토사회에 기여한 이 회장은 이같은 이색 경력 탓에 복지회 소속 자원봉사자들과 어르신들 사이에서 ‘마마’로도 통한다. 대장부를 연상케하는 호쾌한 성격에, 밑반찬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챙기는 세심함까지 더한 이 회장은 “봉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보”라고 힘줘 말했다.

그녀는 “한 가정을 꾸리면서 먹고 살고 있지만 봉사 하나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음 무료 급식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지금은 힘없는 노인이 됐지만 이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고,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들의 모습이 훗날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봉사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 무료급식을 실시했던 1999년의 열정과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기도한다는 이 회장. 인생을 공부한다는 자세,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지금까지 그녀를 끌어온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저 봉사 선배라는 생각으로 (복지회를)이끌고 있다. 내가 아닌 여기에 참여하는 120명의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중심”이라며 회원들에게 그간의 공로를 떠넘겼다.

꼭 쥔 손안에 있던 사탕하나를 건네며 함박웃음을 짓는 노인들의 얼굴을 보면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녀. “그저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할 뿐이다. 마음 편히 드시면 그걸로 족하다”면서 “노년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에 마지막까지 어르신들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봉사에 대한 남다른 철학도 밝혔다. 그녀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복지회를 찾아온다”면서도 “다른 목적을 품고 오는 사람들은 정중히 사양한다. 진정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이들만 찾아와달라”고 요청했다.

정계에 대한 유혹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녀의 확고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같은 사람 하나쯤은 이 일을 꼭 지켜 나가야 하지 않겠냐”면서 “큰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확신에 찬목소리로 답했다.

 

“항상 변치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회장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한 17년의 세월과 봉사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끼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규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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