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용퇴? 퇴출!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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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가 말했다. “이해찬 의원을 이번 공천에서 배제하는 나름대로의 취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홍창선 위원장이 반박했다. “이걸 공천배제 혹은 탈락, 마치 당이 버린 것처럼 해석을 한다면 그것이 아니고….” 진행자가 “적절한 용어를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홍 위원장이 답했다. “원로로서 용퇴를 해서 새 시대에 맞는 후진 세력들이 나라를, 미래를 이끌어갈 일을 해야 하고….” ▶15일 출근길에 라디오 대담이었다. 홍 위원장은 ‘용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배제니 탈락이니 하는 언론 표현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국어사전에 정의된 용퇴(勇退)는 이렇다.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 이 의미의 기본은 자각(自覺)과 결행(決行)이다. 스스로 판단해 스스로 물러나는 행위다. 홍 위원장은 이해찬 공천 배제를 용퇴로 정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시각까지 이해찬 의원은 연락 두절 상태였다. ▶두 시간여 뒤 이 의원이 나타나 입장을 밝혔다. “이유와 근거가 없다. 도덕성이든, 경쟁력이든, 의정 활동 평가든 합당한 명분이 없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김종인 대표도 공격했다. 즉시 탈당계를 제출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SNS에는 “가능하신 분은 (세종시로) 내려와 만나주십시오. 29일 남았습니다”라는 호소문도 올렸다. ▶용퇴는 멋지고 당당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말이다. 이게 현실 속에서는 전혀 다르게 쓰일 때가 많다. 정년을 앞두고 명퇴를 해야 하는 공직자, 치고 올라오는 후학을 위해 물러나야 하는 인생 선배, 그리고 여론에 떠밀려 정계를 떠나야 하는 정치인까지. 사실상 밀려나는 경우들이다. 그때마다 용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약간은 구차스럽고 약간은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마지막 결정만은 본인이 했다는 위로가 남는다. 이 의원은 이마저도 아니다. 당의 결정을 끝까지 거부했다. 당 지도부나 이 의원이나 모양새가 우스워졌다. ▶얼마 전 유인태 의원이 낙천했다. 곧바로 소감을 밝혔다. “저의 물러남이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불출마 선언)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미뤄왔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며칠 뒤 방송에 출연해서는 더 투박하게 말했다. “괜히 미적거리다가 ‘쪽 팔리게’ 됐다.” 하지만, 그의 처신을 ‘쪽 팔리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다들 아름다운 용퇴라고 말한다. 이렇듯 용퇴란 물러나는 당사자가 선택할 말이다. 쫓아내는 상대가 쓰면 안 된다. 자칫하면 쫓겨나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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