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소재 섬유수출 중소기업 A사는 최근 미국의 한 거래처로부터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요청받았다. 한ㆍ미 FTA를 활용한 관세인하 혜택을 보려면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A사는 큰 고민 없이 자국에서 생산됐다는 정보만으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거래처에 송부했다.
그러나 미국 세관이 통관 이후 원산지 검증에 나서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원재료 관련 서류 등 원산지 상품임을 입증하는 기록 없이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한 A사는 미국 세관에 입증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고, A사 제품을 수입한 거래처는 결국 혜택을 받은 관세액을 도로 납부하게 됐다.
화가 난 거래처는 A사에 납부세액 배상을 요청, 결국 A사는 FTA 활용은커녕 금전적 손실과 거래처 단절이라는 씁쓸한 결과를 맞았다.
FTA를 활용하는 수출기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원산지증명 및 사후 검증 등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4일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원산지증명은 FTA 체결국에 수출할 시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제품임을 입증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원산지 상품임을 입증하려면 통상 해당 물품의 거래내역, 생산 및 생산에 투입된 원재료 등에 관한 서류 또는 정보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기록이 없는 경우 해당 원산지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중소 수출기업 상당수가 이러한 기록 없이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고 있어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FTA 활용경험이 있는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2.8%는 원산지 입증서류를 확보하지 않고 임의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하고 있었다.
특히 FTA 특혜관세 적용 시 원산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으면 관세추징ㆍ가산세ㆍ벌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도 수출기업 39.0%는 원산지 사후 검증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부실한 원산지증명으로 손해를 입을 경우 국내에서는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원산지증명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추가 관세 등은 해당 수출국 세관에서 직접 부과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구제는 물론 관련 통계조차 확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원산지검증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인식 제고와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지은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ㆍ중 FTA 발효 등으로 원산지 검증 요청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들은 FTA 체결국별 원산지 규정을 꼼꼼히 확인하는 한편 정부에서도 기업규모별 맞춤형 교육 및 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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