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장시환·김종민 이어 올해는 전민수
지난 20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더그아웃에서 황병일 kt wiz 수석코치를 만나 물었다. “코치님, 찬스를 날린 타자들이 받는 자괴감은 어느 정도인가요?”
황 코치가 빙그레 웃었다. “이루 말할 수 없죠. 2군에서 막 올라온 선수들 가운데 몇몇은 심할 경우 화장실에서 펑펑 울기도 합니다.” 황 코치가 말을 이어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를 날렸으니 얼마나 괴롭겠어요. 1군 타석에 서는 순간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아이들이잖아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엄청난 거죠. ‘괜찮다, 기회는 또 온다’고 위로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줄 게 없어요. 보는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감정은 차마 다 형용할 수 없다. 굳이 표현을 조금 하자면 가슴이 메어지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앞으로 나아갈 자신감마저 사라진다. 살면서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 중 하나이다.
kt 9년차 외야수 전민수(27), 그도 비참했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경험했다. 전민수는 2008년 2차 4라운드 지명으로 현대 유니콘스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를 밟았다. 덕수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등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잇따른 부상 탓에 활약이 없었다. 이따금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안타 하나 기록하지 못했다. 그를 기다리는 건 방출 통보였다.
경찰야구단을 거쳐 2014년 kt에 입단한 전민수는 지난 16일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퓨처스리그에서 5할 가까운 타율(0.474·38타수 18안타)를 기록한 활약이 밑바탕이 됐다. 그가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건 7년 만이다. 그럼에도 타석에 들어설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조범현 kt 감독은 “한번 써보고 싶은데, 계속 왼손 투수가 나온다”고 했다. 통계적으로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 전민수는 좌타자다.
22일 마침내 기회가 왔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그는 7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장했다. 첫 타석에선 내야 땅볼로 돌아섰다. 7년 만에 찾아온 기회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듯 했다. 그러나 전민수는 두 번째 타석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팀이 1대2로 뒤진 4회말 무사 만루에서 좌중간 2타점 2루 적시타를 때렸다. 프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7회초 2사 1루에서 우중간 3루타를 때리며 1타점을 추가했다. 4타수 2안타 3타점. 전민수에겐 잊지 못할 밤이었다. 더이상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정말 기쁘다”며 벅찬 가슴을 누르지 못했다.
팬들도 기뻐했다. “시즌 전 팬 페스티벌 때 누군지 못 알아봐서 서로 민망했는데, 이제 알아봐 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간만에 가슴이 짠해지는 걸 느꼈다. 1군에서 오래 보고 싶어졌다”며 서로에게 말을 건넸다. kt가 삼성을 13대3으로 이겼다는 승전보보다 전민수가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야구팬을 사로잡는 건 스토리다. 승패가 아니다. 물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좋겠다만, 지면 또 어떠한가. kt 팬들은 지난해 9년 만에 데뷔 첫 승을 거둔 장시환, 7년 만에 데뷔 첫 안타를 친 김종민의 이야기로 즐거워했다. 올해는 전민수다. 2016시즌 kt 야구 이야기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써내려지고 있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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