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트럼프 逆 교훈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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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예(例)는 문창극씨다. 문씨는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했다. 문제는 ‘말’이었다. 교회 강연에서 한 ‘일본 식민지는 주님의 뜻’이라는 부분이었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 의해 ‘친일 논란’으로 불거졌다.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보면 ‘친일’의 정서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앞뒤 잘린 동영상이 들풀처럼 번져갔다. 그때도 여전하던 반일 감정이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문씨는 지명 14일 만에 사퇴했다. ▶총리나 장관 지명자가 낙마하는 사유는 다양하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은 단골 메뉴가 됐다. 그런데 문씨에겐 이런 비위 논란이 없었다. 지명부터 사퇴까지 온통 ‘친일 발언’ 논란이었다. 그의 조부는 독립운동가 문남규(文南奎) 선생이다. 이 사실이 보훈처에 의해 확인된 것은 그가 사퇴하고 난 뒤다. 성공한 총리가 됐을지, 실패한 총리가 됐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팩트’는 ‘말꼬리’였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냈던 정운찬 총리가 있다. 2010년에 취임한 정 총리의 초반 화두는 ‘말실수’였다. 국회 답변에서 ‘일본군 731부대’를 ‘독립군 부대’라고 말했다. 4선의 독신인 국회의원 빈소를 방문해서는 ‘초선’이라 부르고 ‘자제들이 어린데…’라고 말했다. 그는 말솜씨와는 거리가 있는 경제학자다. 이명박 정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경제였다. ‘말실수’ 고비를 넘긴 그는 그 후 대권 후보군으로까지 성장했다. ▶트럼프의 막말이 국내에서도 화제다. 툭하면 여성 비하 발언을 한다. 멕시코인에게는 인종 차별적 발언을 이어간다. 한국 안보를 말하며 비아냥거린다. 동원되는 단어 자체가 저속하기 짝없다. 그런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미국도 시끄럽다. 공화당이 골머리다. 미국 못지않게 우리 언론의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트럼프 관련기사의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그 대부분 중 대부분이 막말 논란이다. ▶이 속에서 역(逆)의 교훈을 본다. 우리 정치는 너무 ‘말’에 갇혀 있다. 말꼬리 잡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 그러다 보니 매사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만 핥는다. 문창극의 능력 검증보다 말 검증이 중요했을까. 정운찬의 말실수와 국정 능력이 관련 있다는 증거는 나왔나. 미국 정치는 트럼프를 후보로 뽑았다. 그 미국 정치가 괴이하다고 볼 객관적 증거는 없다. 되레 ‘말꼬리’로 재상(宰相) 후보를 날리는 우리 풍토가 더 괴이할 수 있다. ▶트럼프의 막말 정치만 비난하지 말고, 한국의 말장난 정치를 고쳐야 할 때다. 말꼬리 잡기, 말실수 부풀리기, 없는 말 만들어내기…. 이것처럼 무의미하고 저급한 정치 기술은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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