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친척들의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벌초 때가 오면 손이 모자라게 되는데 대구시 동구 청장을 비롯 직원들이 대신 벌초작업을 도왔다. 이를 맨 먼저 시작한 사람은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도 김무성 대표가 ‘옥새’를 가지고 잠적하는 바람에 등록도 못하고 주저앉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
그가 이처럼 손회장의 조상 묘소 벌초에 나선 것은 대구 동구의 첨단의료복합단지에 투자유치를 위해서다. 이재만청장이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는 바람에 주민들의 신임도 컸고 마침내 국회 문 앞에 까지 이르렀으나 뜻하지 않은 ‘유승민 파동’에 눈물을 머금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대구 동구만이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이 이렇듯 돈을 끌어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에 까지도 손을 뻗친다. 결국 그것이 자신의 성적표가 되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지방자치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정사립이다. 어떤 곳은 돈이 넘쳐 철철 쓰고 어떤 시ㆍ군은 직원 봉급도 정부에서 주지 않으면 은행 빚을 얻어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시청 청사를 중앙청사 보다 화려하게 짓고도 남아 종합운동장이며 승마장까지 마련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돈이 없어 낡은 청사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사무를 본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법인 지방소득세의 50% 상당을 도세(道稅)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자체수입예산 60%가 넘을 정도로 재정형편이 좋은 지방자치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수원, 성남, 용인, 화성 등이다. 물론 지방에도 천안, 아산 등 형편이 좋은 곳이 많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분배를 통해 부자 시ㆍ군과 가난한 시ㆍ군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 그러나 이것인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가난하자’는 것으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재정이 좋은 시ㆍ군의 경우,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얻은 결과인데 마치 이것을 ‘복권당첨’처럼 공짜로 얻은 소득 취급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애써 투자유치를 위해 남의 조상 묘소에 벌초도 하고 공장유치를 위해 외국까지 뛰어 다니겠느냐는 것. 그래서 다 같이 못사는 균형 보다는 증세를 통해 가난한 시ㆍ군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의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여기서 또한 생각할 것이 있다. 시ㆍ군마다 종합운동장을 가져야 하고, 공연장 같은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드는 시설에 경쟁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가까운 시ㆍ군과 공조를 해서 함께 사용할 수는 없을까?
또 자치단체마다 소모적인 축제를 벌이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시ㆍ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축제가 360여개나 되는데 이중 강원도의 산천어 축제만 높은 수익을 내고 있으며 부산의 국제영화제, 공주ㆍ부여의 백제문화제 등등 거의가 적자 투성이고 선심성 이벤트도 많다.
민주주의의 풀뿌리라고 하는 지방자치가 중앙예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방자치가 아니다. 이 기회에 지방자치의 건전한 재정자립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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