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양봉농가를 가다

벌처럼 성실하게~ 노동의 참맛 꿀 채취 
자연이 주는 단맛 진짜 꿀맛

14-1.jpg
요즘 어디에도 꿀, 허니(Honey)가 빠지지 않은 곳이 없다. 허니 브레드, 허니 감자칩, 허니 맥주, 허니 막걸리 등 먹는 것은 물론 얼굴에 붙이는 팩, 심지어 샴푸까지 빼놓으면 섭섭할 정도다.

 

지난해 꿀이 들어간 감자칩이 품귀현상을 빚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터라 이제 한풀 꺾이나 싶었는데, 허니는 여전히 대세다. 때마침 4~6월은 꿀을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세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양평의 양봉 농가를 찾았다.

 

지난 1일 오전 10시 양봉 농가에 가기 전, 양봉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양평군 봉산물 가공연구소’에 들렸다.

차에서 내리니 양경열 경기도양봉연구회장이 반갑게 맞았다. 사실 연구소는 경기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기자 체험으로 양봉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지면 속 양 회장에게 양봉 농가 섭외를 부탁했던 것.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네요~”라는 인사말을 건네자 양 회장은 “우리 꿀벌들도 실물이 참 예쁩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양봉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꿀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꿀벌은 인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이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이내에 인류도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죠. 그만큼 꿀벌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식물 가운데 4분의3은 꿀벌의 수분에 도움을 얻습니다.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과일과 곡물 등 작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는 물론 국가경쟁력도 하락하죠. 꽃과 나무가 없는 지구를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꿀을 채취하러 왔을 뿐인데. ‘인간존재론’이나 ‘지구종말론’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나왔다.

“양봉은 이 꿀벌을 길러 벌꿀과 꽃가루,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등을 얻는 일을 말해요. 꿀벌이 월동을 끝내는 2월말쯤 날씨가 좋은 날(10도 이상)을 골라 양봉통을 검사합니다. 여왕벌이 살아 있는지,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먹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그리고 대용화분떡(꽃가루)을 넣어줍니다.

 

화분떡이 들어오면 여왕벌은 산란을 하고, 일벌들은 유충에게 먹이를 주죠. 이때 일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바로 로열젤리입니다. 유충이 번데기가 되고 성장해 꿀벌로 태어나면 양봉통에서 10일간 일을 해요. 이후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면, 각자의 역할 분담에 맞춰 문을 지키고, 육아를 담당하고, 물을 기르거나 꽃, 프로폴리스 따러가는 일을 하게 됩니다.”

14-2.jpg
봄만 되면 어김없이 보이던 꿀벌이, 가까이 올까봐 무서워 도망가기 일쑤였던 꿀벌이,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1천마리도 안되던 꿀벌이 4월 초순이 되면 1만5천~2만 마리까지 증가하죠. 그리고 꿀을 채취하러 이동하게 됩니다. 4월 벚꽃, 5월 아카시아, 6월 밤꽃 순으로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꿀을 따죠. 대구, 충청, 중부, 강원지역으로 이동하면서요. 9월부터는 겨울식량을 준비해 다음해 2월까지 월동기를 보냅니다.”

양 회장의 설명에 기자의 입이 딱 벌어졌다. 단순히 벌통에 벌을 키워 꿀을 채취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양봉기술에 담긴 생명과 과학의 신비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 기자의 마음을 들여다봤는지 양 회장은 “어때요. 너무 신비롭지 않나요? 고 작은 녀석들이 질서정연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죠. 꿀벌은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게 없다니까”라고 뿌듯해했다.

이날 기자가 할 체험은 꿀벌이 채취해온 벌집의 꿀을 모으는 일이었다. 본격적인 체험을 위해 양 회장과 이상철 도양봉연구회 사무국장의 양봉장으로 이동했다.

양봉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양봉용 모자와 방충 옷을 입는 것. 벌이 옷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퍼를 잘 채우고, 소매 위로 고무장갑을 끼우고, 허리춤을 꽉 졸라매는 것이 관건이었다. 드디어 벌과 대면할 시간. 양봉통을 열자 수십 아니 수백여 마리의 벌들이 날아올랐다. 

“벌침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겁먹지마”라고 웃는 이 씨의 농담에, 따라 웃지 못하는 순간이다. 벌집을 들어올리기 위해 훈연을 뿌렸다. 훈연은 벌들이 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연기다. 이 씨는 벌들을 위해 특별히 칡뿌리를 태워 훈연을 만든다고 했다. 벌집 속에는 벌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벌들을 조심스럽게 솔로 털어냈다. 그렇게 수십여 개의 벌집을 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웬걸 꿀이 가득 차있는 벌집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이 씨는 “올해가 흉작이야. 양봉 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올해처럼 안되긴 또 처음이네. 이맘때쯤이면 꿀을 2번 정도 얻었어야 하는데, 이게 처음이야. 근데 꿀도 많이 없지”라고 한숨 쉬었다.

14-3.JPG
설명을 듣자하니 이상 고온 현상으로 벚꽃, 아카시아 등 밀원수의 꽃들이 말라버렸다는 것.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보니까 꽃이 말랐어요. 특히 지난 달 한낮 기온이 30~31℃까지 올라갔잖아요, 그러니 꽃도 다 타버렸어요. 강원도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하더군요. 지난해에 비해 수확량이 30%나 감소했어요.”

앞서 들었던 양 회장의 설명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이상 고온 현상은 꿀벌에게 직격탄을 가했고, 그로 인해 꿀의 생산량이 감소, 결국 양봉 농가 소득 하락의 주범이 됐다.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히 일했네요. 이거 보세요. 이 통은 꿀이 가득 찼어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벌집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작은 꿀벌들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벌집을 들고 채밀기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동그란 원형의 채밀기 속에 벌집을 하나하나 옮겼다. 

이 씨가 스위치를 켜자 채밀기가 돌기 시작했다. 원심력에 의해 꿀을 빼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잠시 후 채밀기 밑으로 샛노란 금빛의 꿀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씨는 한 번 먹어 보라며 재촉했다. 꿀벌들의 노고를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묵직하면서 부드러운 꿀이 손끝에 느껴졌고, 입에 갖다 대는 순간의 그 달콤함이란. 누가 갓 짜낸 꿀을 먹어 봤으랴. “참으로 예쁜 놈들 이죠. 마치 잘 길러줘서 고맙다고 보답이라도 하듯 이렇게 큰 선물을 줍니다.”

부인에게 신장 이식 수술을 해주고 지난해 1년 양봉을 쉬었다는 이 씨. 아직 몸이 회복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꿀벌들이 보고 싶어 다시 양봉을 시작했다는 그는 “내 이놈들 때문에 먹고 살고, 이놈들 때문에 웃습니다. 양봉장에 와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몰라요. 해뜨기 전에 나와 해지고 나서 들어간다니까요.”

때마침 이 씨의 부인이 “오늘 하루 수고 했다”며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꿀물을 가지고 나왔다.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보고 “이제 벌들이 무섭지 않죠”라고 물었고, 기자는 “양봉통 하나 가져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송시연기자

사진= 김시범 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