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진짜 경기도의 입장인가. 도지사 행보와 감사실 조치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 지사는 지난 24일 청와대를 찾아갔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을 만나 “(지방재정개편안으로 인한) 도내 6개 불교부단체의 충격이 크다.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앞서 남 지사는 해당 지역 시장들도 면담했다. 여기서도 “정부가 내용과 과정에 모두 잘못된 방향을 잡고 있기 때문에 나도 (시장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교부단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 입장을 정부에 관철하려 뛰어다니고 있는 남 지사다.
그런데 이와 거꾸로 가는 도의 모습이 있다. 지난 1일 성남시, 용인시, 화성시 등에 팩스가 도착했다. 발신 기관 표시도 없는 문서였다. 제목은 ‘지방재정개혁 관련 반대집회 참여자의 복무 관련 규정 검토’다. 공무원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할 경우 징계를 한다는 내용이다. 징계 조치를 하지 않는 시장도 고발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내용이나 시기를 볼 때 누가 보더라도 지방재정 반대 행동에 대한 경고다.
수소문 끝에 팩스의 발신처는 경기도청 감사관실로 밝혀졌다. 언론이 묻자 감사실 관계자는 ‘행자부 직원이 (공무원의 집단 시위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해당 시군에)알리라고 해서 보냈다’고 설명했다. 발신 기관 표시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식 문건이 아니라 팩스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가정해보자. 공무원들이 경고로 가득찬 팩스를 받았다. 그런데 그 팩스에 발신 기관 표시도 없었다. 거기에 ‘시장까지 고발될 수 있다’는 표현도 들어 있었다. 해당 시 공무원 조직 전체가 움츠러들지 않겠나. 도무지 혼란스럽다. 도지사는 연일 불교부단체를 보듬었다. 시장들을 만나 피해에 공감을 표했다. 청와대까지 찾아가 고쳐달라고 읍소했다. 그런데 도 감사실은 누가 봐도 협박장인 팩스를 해당 시에 내려 보냈다.
관선(官選) 시대 도(道)의 역할은 그랬다. 중앙 정부가 ‘나무 심으라’고 지시하면 일선 시군에 ‘실적 없는 시장 군수는 징계하겠다’고 협박했다. 민선(民選) 시대 도의 역할은 이렇다. 중앙 정부가 ‘100그루 심으라’고 하면 다시 중앙 정부에 ‘시군 여건상 50그루밖에 심을 수 없다’는 이견을 전달한다. 그것이 지방자치제도에서 광역이 갖는 중간자적 역할이다. 이번 ‘팩스 경고’는 어디를 보더라도 관선시대의 그것이다.
몇백~몇천억원이 삭감되고 말고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작금의 지방재정개편 추진 흐름 속에 어른거리는 반(反)지자체적 모습이다. 일방적으로 예산 삭감하고, 해당 지자체의 요구에 귀 닫고, 반발하는 지자체에 협박장 날린다. 그런데 그 중간에서 상명하달(上命下達)의 구태(舊態)를 좇는 경기도의 모습이 목격된다. 수원시민, 성남시민, 고양시민, 용인시민, 화성시민, 과천시민도 전부 경기도민 아닌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