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블루베리 수확 도전기

톡~ 하고 건드리니 툭~ 건강한 보랏빛 한아름
딱 지금 6~7월 ‘제철 블루베리’

14-1.jpg
▲ 한진경 기자가 22일 오전 화성시 장안면 화성블루베리농원에서 고품질의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다.

퇴근 후 야식이 생각나는 밤, 야식을 주문할까 고민하다 살이 찐다는 두려움에 전화기를 내려놓곤 한다. 하지만 배가 고파 계속 고민을 할 때면 엄마가 건네주시는 주스가 있다. 

바로 블루베리 주스. 블루베리 주스는 포도와는 사뭇 다른 새콤달콤한 맛을 입 안에서 감돌게 하면서 한밤중 배고픔을 금세 잊게 해준다. 또 오묘한 보라색 빛은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가득해진다. 요거트를 먹을 때도 냉장고에 넣어둔 블루베리를 몇 알 꺼내 함께 섞어 먹으면 배가 되는 달콤함에 행복해진다. 

새콤달콤한 맛이 있고, 바다 건너에서 꽁꽁 얼려진 채로 포장돼 와 1년 내내 손쉽게 슈퍼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에 블루베리는 항상 집 냉장고 한편에 가득 자리 잡은 과일이 됐다.

 

문득 ‘냉동 블루베리도 이렇게 맛있는데 직접 따 먹는 블루베리는 얼마나 맛있을까!’하는 궁금증에 찾아보니 원래 블루베리는 6~7월에만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를 맛볼 수 있는 시즌 과일이라고 한다. 

 

바로 지금이 맛이 가장 일품인 블루베리를 만나볼 수 있는 시기라는 것. 본격 수확 시즌이 시작된 블루베리 농가를 찾아 수확에 도전했다.

 

22일 오전 7시20분께 화성의 한 블루베리농장. 오후에 장마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30여㎞를 달려 블루베리농장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이미 농장에서는 블루베리 수확작업이 한창이었다. 

요즘은 날이 더워지면서 작업시작 시각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꽃무늬 모자와 일바지를 장착하고, 얼굴은 하얗게 선크림으로 중무장하고 나선 어머니들의 뒤를 졸졸 따라 블루베리 따기에 돌입했다.

14-2.jpg
▲ 선배 농부와 함께 수확한 블루베리를 보이고 있다.
1만9천834㎡규모의 농장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블루베리 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과 어머니들의 설명을 들으며 농장을 살펴보자 그야말로 블루베리 신세계가 펼쳐졌다. 고랑마다 다른 품종의 블루베리가 심어져 있을 만큼 농장에 있는 블루베리 품종만 10여가지가 된다고 한다. 

듀크, 노스랜드, 챈들러, 블루크롭, 다로, 엘리오트, 엘리자베스, 레가시, 버클리 등 이름들은 모두 낯설기만 했다. 어려운 이름과 함께 육안으로 보기에 기자의 눈에는 모두 다 비슷비슷해 보여 어떤 품종을 수확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10년째 농장을 지키는 사장님은 마치 쌍둥이 자식을 대하듯 ‘다 똑같아 보이지만 얘는 알이 더 크고 당도가 높고 얘는 식감이 좋아요’라며 하나하나 사랑스럽게 소개했다. 무농약 친환경 블루베리이니 직접 따먹어 보라는 말에 품종별로 몇 알 먹어보니 미세한 맛의 차이가 느껴졌다.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블루베리에 흠뻑 빠져 소매를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수확에 나섰다. 우선 내 마음을 움직인 품종은 알은 다소 작지만 새콤달콤하기로 유명하다는 노스랜드. 나뭇가지에 달린 수십개의 알을 살짝 건드리자 노스랜드 한 알이 톡 하고 떨어졌다. 특별한 기술도 없이 떨어지는 블루베리에 ‘어! 따기쉽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맹이 여러개를 한 번에 잡아당겨 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수확작업을 얕잡아 본게 잘못이었을까. 방심한 순간, 사고를 쳤다. 툭툭 건드리며 무심하게 따다 옆 나뭇가지를 건드렸는지 블루베리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 것이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블루베리를 주워담는 기자를 보며 옆에 선 어머니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며 2가지 노하우 전수를 시작했다. 블루베리 잘 따기 첫 번째 노하우는 바로 ‘블루베리는 아기’라고 생각하는 것.

14-3.jpg
▲ 블루베리 선별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어머니는 살짝 잡기만 해도 잘 떨어져 쉬워 보이지만 절대 빨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작고 여린 알맹이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기를 대하듯 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행여 블루베리에 흠집이 나는 것을 막아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기자가 했던 것처럼 무자비하게 알을 따다가는 연약한 알맹이가 터져버려 상품성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노하우는 ‘빨간색 말고 검은색 블루베리만 딸 것’. 어머니는 꼭지가 달리는 블루베리 아
랫부분을 보여주며 이곳에 조금이라도 빨간색이 남아있다면 아직 딸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려줬다. 꼭지부분까지 새까맣게 변해야 100% 영글었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

 

어머니의 가르침에 기자의 바구니 속에 담긴 수십알의 블루베리를 살펴보니 빨간 블루베리가 숱하게 많았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빨간 블루베리를 입 속으로 옮겼다.

두 가지 노하우를 전수받자 무작정 덤볐던 것과는 달리 블루베리 수확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손톱만한 알맹이를 살짝 잡고 구석구석 살핀 다음 모두 까맣게 변했다면 톡 하고 떼어내기를 여러번 반복하니 손이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오가 가까워짐을 알리는 뜨거운 햇볕까지 더해지면서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농장을 울리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사장님이 준비한 새참. 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운 음료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한 접시가 준비됐다. 평소 떡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새벽부터 서두른 탓인지 블루베리 수확에 집중한 탓인지 꿀맛이었다.

새참으로 다시 힘을 낸 뒤 이번엔 듀크 따기에 도전했다. 듀크는 알이 크고 보기 좋아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이에 가장 대중적인 블루베리로 인식돼 마트에서도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품종이다. 

그러나 노스랜드에 비해 새콤달콤하는 등 특별한 맛은 덜하다. 벌써 노스랜드에 익숙해져일까 듀크를 맛보자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콤함보다 잔잔한 단맛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듀크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들과 함께 재잘재잘 떠들며 수확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고 블루베리를 담은 노란색 바구니는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14-4.JPG
▲ 수확한 블루베리를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있다.
이렇게 수확을 마친 뒤 사장님을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블루베리로 만든 각종 공산품이 눈에 띄었다. 블루베리 엑기스부터 말린 블루베리, 블루베리 즙 등이 각종 마트와 인터넷쇼핑몰에서 소비자를 만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블루베리 업계는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외국산 블루베리가 오랜 시간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 블루베리 재배 농가도 포화상태가 되면서 단가가 하락하는 것. 

더욱이 수확기인 6~7월이 지나면 신선도가 뚝 떨어지는데 다른 업체들에 밀려 시장에 나가지조차 못할까 우려한 농민들이 싼값에 출하하면서 값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 ㎍에 3만원가량(소비자가)에 판매되던 블루베리는 지난해 2만5천원 선으로 떨어졌고 현재는 2만~2만5천까지 하락한 상태다. 박상기 화성블루베리 농장 대표는 “가격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신상품 개발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매년 내려가는 가격에 답답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농장에서 직접 수확하고 블루베리 업계의 속사정까지 들여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는 ‘이건 알이 작고 새콤하니 노스랜드군, 좀 심심한 맛이 있으니 듀크가 틀림없어’ 등 블루베리 감별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진경기자

사진=오승현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