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경인아라뱃길

물류·운하+레저·문화 흐르는 꿈의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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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약속이 흐르는 뱃길’ 경인아라뱃길은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염원이다. 국내 최초의 운하라는 수식어를 가진 경인아라뱃길엔 단순한 물류·운하의 기능 이외에 레저와 문화가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뱃길이기도 하다.

 

선진국 레포츠인 요트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해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유람선 등을 타고 물길에 몸을 실어 보낼 수도 있다. 지난달 국내 최대 카약 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수상자전거·카약·펀보트 등 다양한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 아라수경8경과 파크웨이 등 경인아라뱃길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분수와 수변스탠드는 만남과 공연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고, 국내 최대규모의 인공폭포와 멋진 야간 조명은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 전통을 간직한 수향루가 포함된 테마파크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생태공원까지 운하와 자연이 어우러진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경인아라뱃길은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며 빠른 뱃길로 잇고자 지난 2011년 서해(인천 서구 오류동)에서 한강(서울 강서구 개화동)까지 잇는 폭 80m에 길이만도 18㎞에 달하는 운하다. 사업비만도 2조 2천458억 원이 들어간 경인아라뱃길에는 245만3천㎡의 아라인천여객터미널을 비롯한 170만㎡ 규모의 아라김포여객터미널 등으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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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아라뱃길의 역사는 800여 년 전 고려 고종 때로 되돌아간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다.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강화군 불은면의 손돌목은 뱃길이 매우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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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고자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에서 원통현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운하를 시도했다. 하지만, 원통현 400m 구간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결국 운하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고려 공양왕 때 왕강(王康)도 실패했고, 조선시대에도 강화도 우안 손돌목 부근의 암초와 한강 하구의 하천 퇴사로 인해 잦은 해난사고 발생으로 한강운하 굴착 시도했지만, 인력과 기술의 한계로 좌절했다.

 

광복 이후 경인아라뱃길은 내륙 수송능력 확대를 위한 검토만 계속되다, 1987년 굴포천 유역 대홍수 발생하면서 5년 만에 굴포천방수로 사업으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계속되는 환경단체의 반대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사업은 수년간이나 계속 지연됐다.

 

이후 오랫동안 경인운하 사업계획 및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이어졌고 2차례에 걸친 용역수행 결과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어 지난 2008년, 민자사업에서 사업시행자가 한국수자원공사(K-water)로 변경됐다.

 

경인아라뱃길은 고려 고종 대 이후 무려 800여 년 만에 ‘경인아라뱃길’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현재의 경인아라뱃길은 평상시에는 운하로, 홍수 때에는 방수로로 쓰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고 있다. 주민들에겐 주변 친수공간 덕분에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이고, 타지역 관광객을 끌어모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자이기도 하다.

 

글 = 이인엽기자   사진 =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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