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동포의 끝나지 않는 고통] 1. 유령마을 전락하는 집단거주지

하나 둘 하늘로 떠나고 이젠 그리움만 남는구나

▲ 고령의 사할린 영주 귀국 동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이 모여 사는 사할린 마을의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0일 사할린 영주 귀국 동포가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안산시 상록구 안산고잔고향아파트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위태롭던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한반도의 젊은이들은 일제 패망 후 대한민국, 일본, 러시아 어느 국적도 갖지 못한 채 난민보다 더 한 삶을 겪어왔다. 

혹독한 삶 속에서 평생 고향 땅만 그리워하던 사할린 동포 1세대는 10여년 전 문화도 언어도 다르지만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직 1세대만 영주귀국이 가능하다는 한일정부 간의 협약으로 가족을 남겨두고 와야만 했다. 이산가족을 택하더라도 고국 땅을 밟고자 영주귀국한 이들은 현재 대부분이 90세를 넘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국내 사할린 동포 거주지는 빈집이 늘어나 유령마을이 될 위기까지 처했다. 

이에 본보는 일본과 러시아는 물론, 우리 정부의 방관 속 역사적 난민으로 전락한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의 현재를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해마다 이웃에 하나둘씩 빈집이 늘어나는 만큼 쓸쓸함도 커져만 가네요”

 

일제의 강제징용에 이역만리 떨어진 사할린으로 끌려갔던 조선의 청춘들이 반세기가 훌쩍 지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영주귀국한 동포들은 어느새 백발 가득해져 생을 마감하면서 이들의 집단 거주지는 하나 둘 주인을 잃고 비어 가고 있다.

 

9일 오후 1시께 사할린 동포 1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이곳은 1989년 정부가 땅을 제공하고 일본 적십자사가 비용을 대는 방식으로 조성한 영구임대 아파트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놀이터 등에서 어린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다른 아파트와는 달리 이곳은 고요함만이 흘렀다.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걷는 노인들이 종종 눈에 띌 뿐이었다.

 

이때 이화선 할머니(90·여)가 홀로 아파트를 거닐며 말동무를 찾고 있었다. 열살 때 사할린에 가 평생을 보냈다는 이 할머니는 2000년 남편과 함께 영주귀국해 17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적적함에 자주 집 밖을 나서곤 한다. 

이 할머니는 “고국이 그리워 돌아왔지만 이제는 그리움 대신 외로움으로 힘겹다”면서 “함께 영주귀국해 마치 가족처럼 동고동락하던 이웃들이 남편처럼 먼저 하늘나라로 갈 때면 외로움이 더욱 커진다”고 한숨 쉬었다.

 

2000년 평균 나이 69세였던 안산 고향마을 동포들은 어느새 평균 88세가 넘어 매년 10여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972명에 달했던 이들은 현재 466명만 거주하며 벌써 8가구가 주인없이 빈집으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특히 정부의 영주귀국 대상자가 ‘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로 1세대만 귀국할 수 있어 2~4세대 사할린 동포들은 귀국자체가 불가,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도 없는 실정이다.

 

또 이날 오전 11시께 임대아파트인 화성시 복사꽃마을주공7단지아파트도 2008년에 입주한 103명의 사할린 동포들이 나이가 들며 현재는 83명만 남아 있다. 김웅자 할머니(72·여)는 “2008년 혼자 영주귀국해 홀로 생활하는데 밥도 혼자 먹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 보니 늘 외롭다”고 말했다.

 

영주귀국해 전국 각지에 사는 2천900명의 사할린 동포 1세가 생을 마감하면서 거주지는 갈수록 공동화(空洞化) 되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유령마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평균 90세가 넘은 사할린 동포 1세들이 매년 사망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이들에 대한 더 많은 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재원 안영국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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