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성 교회들이 기득권층과 정치 권력층에 치중하고 부의 축적 그리고 건물의 대형화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다고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가 너무 급속히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침체되어 가는 교회가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은 하나의 박제된 모습의 교회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럽교회를 방문하다 보면 문화유산이나 관광장소로 전락해 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더 나아가 업종(?)을 변경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공간인 카페나 음악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교회들이 오히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세속도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의 진보적인 신학자인 하비 콕스(Harvey Cox)가 쓴 ‘종교의 미래’(원제 The Future of Faith, 김창락 한신대 명예교수 번역)를 보면 2천 년 간의 그리스도교가 역사의 변천사 안에서 현재의 세속화된 모습으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인간을 위한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권력과 지배의 논리로 치달아 왔음을 봅니다. 대부분의 혁명의 역사를 보면 교회가 늘 부패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비 교수는 그리스도교가 예수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성령을 교리나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않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교회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예수의 신앙을 세상 밖으로 전하려고 할 때에 신앙의 미래는 밝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 낙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행동이 교회를 신선하게 할 수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는 사랑하지만, 그리스도 신자는 싫어한다.”고 한 말을 교회는 귀담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간디는 마태복음의 ‘참 행복’(5장 3-12절)을 읽고 그리스도 신자가 되려고 마음 먹었다가 영국 유학 중에 유색인종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최고의 다수가 최고의 행복을 위해 형성된 정치구조입니다. 여기에 바로 민주주의의 약점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자유경쟁사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외계층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치권에선 여러 방법과 장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치구호로 끝나 버립니다. 아울러 지구의 생존 문제인 환경을 비롯한 생태론, 여성의 권리, 평화의 문제 등에 대해 종파를 초월해서 함께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하비 교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드로 대 성전에 많은 노숙자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밝게 그리고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교황님은 바로 이 대성당을 세계 가톨릭의 본산과 함께 노숙자들과 같은 소외된 모든이들과 난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세계 본부로도 사용되는 것이 아마도 하느님의 섭리가 아닐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재용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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