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김현철의 ‘공재 윤두서 초상’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공재 윤두서는 조선의 3재로 불려요. 조선 최고의 필력을 가졌던 화가들이죠. 공재는 표암 강세황과 더불어 자화상을 남긴 거의 유일한 작가예요. 사실 조선의 초상화는 제사나 장례를 위해서 위폐 대신 쓰는 것이어서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가로 20.5센티미터, 세로 38.5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그림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았고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게다가 영정 초상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죠.

 

머리에 쓴 탕건의 윗부분은 없고 목 아래의 몸 부분은 아예 남아 있지도 않아요. 얼굴과 수염만 도두라 져서 귀도 보이지 않고 말예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얼굴만 그린 그림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사료집진속’ 제3집에 공재의 자화상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거기에 실린 사진을 보면 몸 부분을 선명하게 살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이후 시나브로 지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죠.

 

2006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미완성작이 아니라 완성작이었다는 것도 밝혀냈어요. 보이지 않았던 귀가 붉은 선으로 표현되었고 옷깃과 옷주름도 섬세한 채색으로 그려졌다는 것도 알게 된 거죠.

 

금릉 김현철 선생은 진경의 미학을 오늘의 미학으로 잇고 있는 작가예요. 산수와 인물에서 그 미학정신은 오롯하죠. 그런 그가 공재의 초상을 완성해 냈어요. 얼굴만이 아니라 본래 조선의 초상이 그렇듯이 의관을 정제한 상태로 말예요.

 

초본을 그리는 과정에서 공재 후손의 얼굴을 참조하는 등 퇴화된 많은 부분들의 실재를 복원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자료들을 참조했어요. 여러 차례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그가 완성한 공재 초상은 참으로 의젓하죠.

 

금릉 선생은 공재가 그린 자화상을 보고 벗 담헌 이하곤이 칭찬하며 지은 글을 주목했다고 해요. “6척도 안 되는 몸으로/ 사해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로 시작하는 글이에요. 옛 화가들은 형상을 그릴 때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고 했고 그 사람의 정신까지도 담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을 잊지 않았던 거예요.

 

이 새로운 공재 초상화는 올해 10월 3일까지 해남 녹우당 충헌국에서 열리는 ‘공재, 녹우당에서 공재를 상상하다’전에서 볼 수 있다고 해요. 혹시 남쪽으로 여름휴가를 떠나시거든 300여 년의 시공을 넘어 다시 이곳에 당도한 공재를 만나보세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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