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는 잊었다… 일만 할 수 있다면”

‘폭염보다 뜨거운’ 수원·성남지역 새벽 인력시장
하루하루 두려운 건 일없는 고통 “언제 불러주나…” 새벽부터 긴 줄
“겨울보다 여름에 일자리 많아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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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새벽 수원의 한 인력사무소 앞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터로 향하고 있다.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공사장이지만 추운 겨울보다 일거리가 많아 현장으로 출발하는 근로자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오승현기자
“땀이 비 오듯 흐르며 폭염과 사투를 벌여도,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영상 34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가 계속되던 3일 새벽 4시께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의 한 인력사무소. 이른 시각임에도 이곳 앞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어느새 80여명으로 늘어나 장사진을 이뤘다. 

이른 새벽임에도 후텁지근한 열기가 인력시장 주변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이들 구직자들에게 더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인력사무소에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일용직 근로자 대부분은 과거 사업실패나 개인 사정 등 인생의 고비를 겪은 터라 무더운 날씨에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듯했다. 

사업 실패 후 수년간 인력사무소를 찾고 있다는 L씨(46)는 “7년 전 사업에 실패해 일용직에 발을 들인 이후 매일 일을 한다는 것이 감사하다”면서 “겨울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일거리가 넉넉한 여름에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둘 생각”이라고 웃음 지었다.

 

잠시 후 인력사무소장이 도착하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수십명의 근로자들은 차례차례 목공업이나 자재정리, 청소 등 다양한 일거리가 있는 오산과 화성, 광주 등 전국 각지의 공사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산으로 향하던 J씨(60)는 “폭염보다 무서운 것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라 날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몇 달 전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같은시각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수진리고개 인력시장에도 일자리를 구하고자 모여든 근로자들이 가득했다. 선착순대로 일거리가 배정되는 만큼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이들은 인근 해장국집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뒤 주변을 서성였다. 

시장 한편에서 일자리를 구한 한 무리의 근로자들이 승합차에 오르자 대기 중이던 근로자들은 행여 오늘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갈까 애타는 마음을 담배로 달래야만 했다.

20여분의 기다림 끝에 일거리를 구한 J씨(54)는 “여름철엔 한낮에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잡으면 장갑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라 힘들다”면서 “그러나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직접 일을 해 돈을 벌 수 있어 기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동은·조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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