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승리보다 용기를 보여줘, kt wiz

프로야구 수도권 더비 ‘더블U매치’가 열린 지난 1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경기 1시간여 앞두고 kt wiz 더그아웃은 텅 비어있었다. 보통 이 시간 때면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나와 취재진을 만나 미팅을 갖는다. 선수 등록 문제, 최근 팀 분위기 등의 이야기가 이 자리에서 오간다.

 

하지만 이날 조범현 감독은 “연패팀 수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더그아웃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감독실에서 조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조 감독은 기자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넨 뒤 굳은 표정으로 TV만 응시했다. 더블U매치에 대한 질문을 던져도 조 감독은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는 말만 반복했다.

 

조 감독은 지난달 말께 삭발에 버금갈 정도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경기가 시작되면 모자를 쓰기 때문에 그의 반삭발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 감독이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성적 부진에 따른 괴로움이 묻어났다.

 

kt는 15일 현재 39승2무62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4할 승률이 무너진 지는 꽤 됐다. 8월 들어선 연패가 계속되면서 다른 팀들의 ‘승수 자판기’ 취급을 받고 있다. 14일 마산 NC다이노스전에서 9연패 사슬을 끊었지만, 탈꼴찌의 길은 산 넘어 산이다. 9위 삼성과 승차가 어느덧 5경기로 벌어졌다.

 

최근 부진한 경기력에 팬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봐도, kt 야구단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댓글을 봐도 희망섞인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총체적 난국”, “빨리 해체하는 게 답이다” 등 비관적인 댓글이 줄을 잇는다.

 

조 감독의 반삭발, 팬들의 분노를 아는지 모르는지 kt는 연일 무기력하다. 질 땐 지더라도 악착 같이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도,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는 모습까지 노출한다. 경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겠다만, 패배에도 익숙해진 것 같아 팬들은 불편하다.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외며 10대14의 절대 열세를 뒤집고 한국 올림픽 사상 최초의 펜싱 에페 금메달을 안겨준 박상영. 국민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무릎 꿇지 않고 기적 같은 역전극을 만들어간 젊은 청년의 모습이 용기를 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팬들은 올 시즌 kt에 우승도, 가을 야구도 바라지 않았다. 진정 바란 건 패색이 짙은 9회말 2사에서 ‘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는 선수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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