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인천종합어시장 얼음창고 일꾼 도전

팔딱~ 팔딱 다시 활기 넘치는 시장 꿈꾸며… “얼음 배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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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쇄기에 통얼음 넣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올해 여름은 유례없이 연일 30℃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전력 사용량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들도 매일 신문과 TV 등에 오르내린다.

시민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의 시원한 활약을 보면서 잠 못 드는 열대야를 버티고 있다.

 

더위에 지칠 때면 누구나 ‘냉장고 안에 들어가 쉬고 싶다’거나 ‘해수욕장에서 아이스케키나 팔아볼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기자도 태양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얼음창고 안은 시원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실제 얼음창고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한 마음에 얼음창고 일일체험을 택했다.

■ 근대 역사와 함께 한 인천종합어시장

일일체험을 위해 중구 연안부두에 있는 인천종합어시장사업협동조합을 찾았다. 인천종합어시장은 개화기 인천의 역사와 함께 하며 성장한 곳이다. 협동조합에 따르면 개항장 무렵인 1880년대 말부터 인천에 살던 일본인들이 늘면서 생선 소비량도 많아져 자연스레 수산물 시장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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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한 얼음자루를 점포에 내려놓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어로권과 판매권을 따내고 근대식 어선을 동원해 어획량을 늘려 갔다. 그러다 1890년 서울에서 내려온 정홍택 씨 형제가 중구 내동에 상점을 차리고 어부들에게 물량을 공급받아 독점 판매했고, 1902년 신포동에 수도권 최초로 상설 어시장을 개설했다. 이 어시장은 북성동으로 이전한 뒤 발전을 거듭했다. 

지금의 인천종합어시장은 인천시가 1975년 연안부두 일대를 메워 도시정비사업을 벌이면서 자리 잡았다. (주)인천개발공사는 북성동 어시장을 옮겨 관리하다 1981년 (주)인천종합어시장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른다.

 

■ 얼음창고 직원도 찜통더위는 못 이겨

인천종합어시장 수산물의 신선도를 책임지는 얼음창고는 협동조합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었다. 사장님과 직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앞치마를 둘렀다.

 

얼음창고에는 통얼음과 알갱이 얼음, 통얼음을 갈아 나오는 얼음가루까지 상인들의 요구에 맞춰 종류별로 만들어져 보관된다. 상인들은 편의상 얼음 덩어리는 ‘통얼음’, 알갱이 얼음은 ‘마대(자루)’, 얼음가루는 ‘고운 거’로 부른다. 생선 아래에 까는 얼음덩이는 통얼음을 전기톱으로 잘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칼집을 낸다.

 

일단 밀린 배달부터 나가기로 했다. 창고에 있는 통얼음을 기계에 넣고 밖에서 페달을 밟으면 얼음가루가 나온다. 설명을 듣고 비닐봉지를 입구에 대고 조심스레 페달을 밟았다. 곱게 갈려 나오는 얼음가루를 비닐봉지에 담고, 바가지로 고무통에 남은 얼음가루를 떠 비닐에 꽉꽉 눌러 담았다. 속칭 ‘딸딸이’라고 불리는 손수레에 마대자루에 담은 ‘마대’ 세 자루와 ‘고운 거’ 두 자루를 실었다.

 

“얼음 쏟으면 다 물어내야 해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기자는 사방에 가득 깔린 각종 생선과 해물들을 볼 시간도 없이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 손수레 운전에만 집중했다. 시장 복도는 가득 깔린 자판에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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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창고 안의 얼음을 정리하고 있다.
30년 넘게 얼음창고 일을 했다는 사장 양흥권 씨는 “자판을 줄이자니 해산물이 적고, 손님이 많을 때는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며 “요즘은 불경기와 휴가철이 겹쳐 한산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얼음을 주문한 점포 앞에 얼음을 내려놓자 아주머니들은 “초보인 거 같은데 새로 왔냐”, “직업 체험하러 왔냐”며 한마디씩 건넨다.

 

기자는 얼음 배달에만 집중하느라 제대로 인사할 겨를도 없이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만 드리고 돌아왔다.

 

그렇게 배달을 두세 번 돌자 땀이 줄줄 흐른다. 애초 편하게 일일체험을 하겠다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이런 감상(?)을 전하자 한 직원은 웃으며 “장사가 잘될 때는 열 자루도 싣고 다닌 적도 있다”며 “손님이 많으면 지나갈 수가 없어 자루를 들고 한참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흔히 얼음창고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추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겨울에는 바닷가의 찬바람이 워낙 매서워 창고 안이 오히려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얼음창고로 향했다. 창고 문을 열자 그제야 시원한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통얼음이 가득 세워진 영하 5℃의 창고 안에서 얼음 부스러기를 쓸며 땀을 식혔다.

 

창고에 있는 통얼음은 갈고리로 모서리를 찍어 끌고 와 분쇄기에 싣는다. 120㎏의 통얼음을 살짝 기울인 뒤 타이어가 깔린 바닥에 조심스레 넘어뜨리고, 갈고리로 당겨 분쇄기 안쪽으로 넣어 고정시켰다.

 

주문이 뜸해진 오후 3시. 직원들이 주문한 콩국수와 냉면이 도착했다. 이곳은 점심때가 따로 없고 주문이 뜸한 시각에 식사를 주문한다고 한다. 식사 시간을 틈타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봤다.

 

■ 40여년 긴 역사… 인천종합어시장 새 활로 ‘절실’

양 사장은 20살 전부터 얼음창고 일을 시작해 아들과 딸을 키웠다.

 

새벽 5시에 냉동차량이 들어오면 통얼음을 창고에 옮기고, 밤새 녹은 얼음을 새로 세팅하려는 상인들의 주문에 정신이 없다. “지금이야 주문이 적으니 한 차에서 한 차 반 정도 분량의 얼음이 들어오는데, 장사가 잘될 때는 차가 줄을 섰어요.”

 

수도권 최대 규모였던 인천종합어시장은 세월이 흐르면서 노량진 수산시장, 소래포구종합어시장에게 밀려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통로도 좁은 데다, 주위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으니 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말 그대로 시장만 들러 찾는 생선을 사면 바로 떠난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수산물이 줄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적어 얼음 값은 10년 전 가격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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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레에 얼음을 싣고 인천종합어시장을 돌며 배달하고 있다.
게다가 시장 건물은 40년이 다 돼 워낙 낡고, 경기 침체까지 겹쳐 얼음 주문량은 갈수록 줄고 있다. 얼음창고 운영업체는 1년 단위로 조합과 계약하기 때문에 얼음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어 ‘삼중고’를 겪고 있다.

 

“요즘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죠. 겨우겨우 먹고산다고 보시면 돼요.”

시장에 들어선 점포는 500여 개지만, 문을 닫은 곳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시장이 잘 돼야 얼음창고도 잘 되는데, 시장이 어려우니 얼음창고 사업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인천종합어시장은 새로운 부지로 옮겨 활기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새 부지로는 인천 앞바다를 볼 수 있는 제1국제여객터미널 부지를 희망하고 있다. 최운학 인천종합어시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전망 좋은 터미널에 노천 목욕탕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휴게시설까지 만들면 젊은 층과 가족 단위의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30년 전부터 인천 앞바다를 지켰던 인천종합어시장이 새로운 모습을 갖춰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덕현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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