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김영란법이 하고 싶은 말

농업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큰 근본이라는 뜻을 담은 ‘농자천하지대본’은 농업ㆍ농촌의 근원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근본인 부정·부패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김영란법과 농업과의 충돌로 세상이 시끄럽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으로 인한 농축산업분야 피해가 최대 2조3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다퉈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명절 선물로 인기가 있는 한우선물세트는 98% 이상이, 인삼제품은 70% 이상이 5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해 볼 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한우 등과 같은 농축산물의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ㆍ부패 없는 정의로운 사회도 만들고, 농축산물의 소비도 위축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은 없을까?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패한 관료를 상갓집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비유한 맹자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김영란법의 제정 취지나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 볼 때 설득력 있는 대안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농축산물에 한하여 김영란법에서 정하고 있는 선물 허용한도 기준을 상향하자고 한다. 김영란법으로 인한 농업ㆍ농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안으로도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법치국가에서 똑같은 액수의 선물인데 농산물은 허용되고, 비 농산물은 처벌 받는다는 이중 잣대의 한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농업과 김영란법의 충돌을 조율할 수 있을까? 우선 김영란법이 농업에 전하는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김영란법이 농업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국민 식탁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정당하게 지불할 수 있는 정상적인 소비 범위 내에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산물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한우선물세트의 한 귀퉁이에 소고기가 채워져 있는 5만원짜리 한우선물세트를 들고 1인시위하는 한우 생산농가의 절박감 못지않게, 한우선물세트 한번 받아보지 못한 서민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중요한 것이다.

 

시장개방의 파고를 넘어 어렵게 오늘까지 온 한우, 화훼생산 농가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농업인이 소비 위축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와 별도로 이제 농업은 보여주기식 명절 선물이나 경조사용이 아닌 국민의 일상 식탁에서 근본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에서부터 소비지유통까지 각 단계별로 소비자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가족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한우선물의 양은? 소비자가 먹기 좋아하는 과일의 크기는? 연인들이 SNS에 올리고 싶은 꽃은? 김영란법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가치소비시대에 우리농업이 가야할 갈림길에 서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농업과 김영란법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영애가 부르는 노랫말처럼 간절히 소망해보자.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박종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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