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요양보호사

치매 노인 별안간 호통! 혼이 쏙 내 부모처럼 그새 情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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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의 두뇌건강을 위한 그림그리기 활동을 돕고 있다.
누구도 세월을 거스를 순 없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어느덧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앞에서 자의 혹은 타의로 남은 여생을 설계하기도 한다.

 

상당수 노인은 가족과의 갈등, 경제적 빈곤, 피치못할 사정 등 각자의 사연을 품고 요양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생애 끝자락에서 얻은 질병과 마음의 병을 병원에서의 ‘의미없는 치료’가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 위한 ‘의미있는 치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는 이런 노인들에게 신체 및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돌봐준다.

 

기자는 노인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남은 생의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주는 요양보호사 체험을 위해 남양주 오남읍에 위치한 산소망요양원으로 향했다.

■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고된 업무

체험을 위해 기자가 요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제법 일찍왔다는 생각도 잠시, 여기저기서 시끌벅적였다. 전날 “오전 9시부터 근무가 시작된다고 보시면 된다”고 귀띔해 준 이주연 원장(60ㆍ여)의 말과는 다르게, 하루를 빠르게 시작하는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 간 사투(?)가 벌어지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조용히 앉아 창 밖의 먼 산을 바라보는 할머니, 계속 노래만 부르는 어르신, 밤새 이야기하자며 떠들다 아침이 되어 잠이든 분, 뜨거운 폭염에 춥다며 긴옷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치는 노인 등 다양했다. 이 원장의 안내에 따라 상담실로 자리를 옮겨 교대 근무자와 하루동안 해야할 일과 밤새 일어난 특이사항을 전달하는 인수인계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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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보호사 체험에 나선 하지은 기자가 어르신들의 식사를 돕고 있다.
“대부분이 치매를 앓는 노인이라 경험이 없으면 일을 하기 쉽지 않고, 전문 요양보호사도 힘들어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는 말이 험난한 하루를 예고했다.

 

적응을 위한 첫번째 미션이 주어졌다. 청소였다.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빗자루를 잡는 순간, 여기저기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낯선 얼굴을 본 어르신들이 혹여나 물건을 훔쳐갈까 걱정 섞인 목소리를 낸 것이다. 새로온 요양보호사라고 기자를 소개하자 그제서야 안심이 된 어르신들은 계속 따라다니며 이곳 저곳을 청소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기자의 체험을 돕기 위해 함께 업무에 나선 이 원장은 “치매 어르신은 별안간 이유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용변을 보는 등 돌발행동이 잦고 당신의 주장이 강해 조심히 대해야 한다”며 “설사 심한 말을 하더라도 진심이 아니니 마음에 담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간단한 아침 체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됐다. 이 원장의 요청대로 기자는 남성 어르신의 목욕을 맡았다.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냥 하시면 되요.” 어리둥절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명료했다.

누가 씻고 누가 씻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옷은 이미 흠뻑 젖고,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어설픈 목욕은 1시간 만에 종료됐다.

 

할아버지 방 안 벽에는 군데군데 가족들의 이름이 잔뜩 적혀있었다.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잘 알기에 가족을 잊지 않기 위해 생각날때마다 벽에 부인과 자녀, 손주들의 이름을 적는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데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우리가 노인분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드려야죠”라는 이 원장의 말에는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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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의 빨래를 널고 있다.
■ 다양한 치매 현상… 개개인 특성 파악 가장 중요

기자는 방문 전 요양시설 종사자 윤리지침과 노인학대에 대한 기본지침, 응급 및 재난상황 대응방침, 치매예방 관리지침 등 여러가지 사항을 숙지하고 방문했지만 실제 체험은 녹록지 않았다.

 

가사업무 등 몸으로 때우는 일은 차치하더라도 이들과 직접 대면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이 원장은 ‘친 가족이라 생각하고 마음부터 열 것’과 ‘개개인 간 특성을 빨리 파악할 것’, ‘갓난 아이처럼 조심히 대할 것’을 주문했다.

 

“치매의 유형을 보면 매우 다양하고, 행동과 말에서 과거의 삶을 볼 수 있다”며 그는 음식점에서 일하던 어르신이 반복해서 파를 다듬고, 트럭을 운전만 30년 하신 할아버지는 운전하면서 입에 벤 욕설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는 사례를 알려줬다. 또 교사 출신의 한 노인은 따라다니며 무작정 가르치려 하고, 새벽 시간대에 노래를 부르거나 하루종일 붙들고 이야기를 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이 원장은 특히 “가족들과 꾸준한 면담으로 개개인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성에 맞게 따라주며 교감을 시도하면 치매 증상도 완화되고, 살피는 보호사들도 편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양보호사의 하루는 생각보다 빠듯한 일정으로 쉴틈없이 진행됐다. 재활과 물리치료, 식사 등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부터는 색칠공부, 콩 고르기, 화투치기 등 ‘치매 완화 프로그램’과 산책, 박수치기 등 ‘건강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후 자유시간엔 빨래ㆍ설거지를 비롯한 가사업무와 말동무로 시간을 보낸 뒤 하루를 정리하는 ‘일지 작성’으로 근무가 마감됐다.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었는지 어르신들을 두고 떠나려는 기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왜 이렇게 일찍 가느냐. 내일은 더 일찍 출근하라’는 어르신들의 요구에 “또 찾아 뵙겠다”고 어색한 웃음을 보이곤 요양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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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과 대화 를 하고 있다.
■ 언어폭력·열악한 환경 ‘사명감’ 필수… 요양보호사 처우개선 절감

최근 성추행ㆍ폭행ㆍ횡령 등 간간히 터지는 요양원 관련 사건사고로 요양시설 종사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차가워지고 있다. 때론 찾아오는 가족들이 ‘밥을 주지 않는다’, ‘때린다’, ‘살려달라’는 등 치매 노인의 말만 듣고 언어폭력을 일삼기도 한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들의 업무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의 태도는 일에 대한 회의감 마저 느끼게 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소규모 요양시설은 보호사들의 채용 조차 쉽지 않다. 최근 요양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탓에 경쟁도 심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시설도 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과 고된 업무에 비해 낮은 임금, 열악한 환경 등 반복된 악순환 고리에 종사자들의 이직률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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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원 청소를 하고 있다.
요양원에 여생을 맡긴 노인들에겐 그곳이 집이고, 요양보호사들이 곧 가족이자 삶의 이유다. 개개인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돌봐주는 이들의 이직은 입소 노인들에게 가족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이주연 원장은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요양원에 입소시켜 자비로 여생을 도우는 한편,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서 생활하기 힘든 어르신도 함께 모시고 있다. 사비를 들이는 만큼 때론 적자를 내기도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바로 사명감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큰 책임감이 따른다고 생각해요. 요양보호사로 인해 좋은 기억으로 한 평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죠. 이게 바로 종사자들이 사명감을 잊지 말고 일해야 하는 이유예요.”

 

요양원 존재의 이유인 ‘노인의 행복’을 위해 먼저 종사자들에 대한 배려와 처우 개선이 먼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남양주=하지은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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