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를 틀면 커피같은 물이 나온다. 노후된 수도관에서 나오는 녹물이다. 녹 냄새가 심하다. 수도관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들도 섞여있다. 물을 1~2분쯤 흘려보내고 나서야 색깔이 투명하게 바뀐다. 하지만 먹기에는 찜찜하다.
경기도내 상당수 노후 아파트가 녹물로 고통을 겪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신도시 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노후화되면서 수도관이 낡고 부식돼 시뻘건 녹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20~30년된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녹물과의 전쟁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래된 아파트의 수도관은 1994년 이전엔 쇠 파이프라 부르는 ‘아연도강관’으로 설치됐다. 이 수도관은 녹이 잘 슬고 섭씨 60도 이상에선 급격한 부식이 일어나 녹 찌꺼기 문제가 심각하다. 때문에 정수장에서 깨끗한 수돗물을 보내도 부식된 수도관을 거치면서 녹물로 변하는 것이다. 녹슨 배관의 수돗물은 녹물과 함께 중금속, 세균, 잔류염소 등으로 인해 음용수로 쓸 수 없을뿐더러 음식을 조리하거나 채소를 씻는 것조차 위험할 수 있다.
현재 도내 공동주택 중 약 110만 가구가 아연도강관을 통해 녹물이 섞인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이들 가정의 고통을 줄이려면 수도관을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체비용이 수억원에 달해 엄두를 못내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도움 없이 각 가정에서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2013년 개정된 주택법은 사용 승인을 받은 후 20년 이상 지난 공동주택의 상하수도 배관 교체 또는 보수비용을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지원 주체도 국가 차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는 노후배관 교체 예산을 공동주택에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년 이상 된 상수도관 교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2019년까지 1천755억원을 들여 33만여 가구의 노후 수도관을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관으로 전면 교체한다. 전체 공사비의 80%가 지원되는데 소규모 주택에서 아파트 등 모든 주택이 해당된다.
경기도도 오는 2030년까지 20년 이상 노후주택 30만 가구의 녹슨 상수도관 교체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노후주택 녹슨 상수도관 개량사업’은 “집집마다 녹물 걱정 없는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남경필 지사의 공약이다. 상수도관 개량 공사비의 최대 80%를 지원한다.
녹이 심한 아연도강관으로 된 수도관을 쓰는 공동주택만 110만 가구다. 2030년까지 30만 가구만 상수도관 교체 지원을 한다면 나머지는 어찌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도와 시ㆍ군은 이 사업을 확대하고 사업기간을 당겨 빠른 시일 내에 노후 상수도관 교체를 해야 한다. 녹물 쏟아지는 수돗물을 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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