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안 발의는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 / 그게 ‘0건’이면 국회의원 그만둬야

국회는 입법(立法) 기관이다. 법률을 심의하고, 고치고, 만든다. 이렇게 정비된 법률이 국민을 통제하고 국가를 지탱한다. 행정(行政) 기관인 정부와 사법(司法) 기관인 법조와는 구별되는 국회의 업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잊고 있다. 한 건 주의식 폭로와 권력 투쟁의 혈전이 난무하면서다. 사회 비리를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다. 권력을 향한 정치 투쟁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우선 돼야 할 의정 활동은 입법이다.

본보가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경기도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봤다. 천차만별이다. 박광온 의원(더민주ㆍ수원정)은 74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찬열 의원(더민주ㆍ수원갑)도 40개를, 박정 의원(더민주ㆍ파주을)도 31개를 대표 발의했다. 20대 국회 개원 이래 전체 국회의원들의 대표 발의는 평균 6.89개다. 적어도 법안 발의 숫자로만 본다면 박 의원은 다른 국회의원 9명의 역할을, 이 의원과 박 의원은 5명과 4명의 역할을 한 셈이다.

정당별 차이도 확연하다. 새누리당 도내 의원 19명의 평균 대표 발의는 4.84개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더민주당은 도내 의원 40명이 평균 10.58개를 대표 발의했다.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4.84개와 10.58개라면 두 배가 넘는다. 우연이라거나 특정 의원 한둘의 영향이라고 보아 넘기기 어려운 차이다. 이런 통계를 접하게 될 도민으로부터 ‘입법에 관한 한 새누리당은 게으르고 더민주당은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하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지적할까 한다. 법안 발의 ‘0건’인 의원들이다. 새누리당에는 서청원(화성갑) 의원이 0건이고, 더민주당에는 신창현(의왕ㆍ과천)ㆍ조응천(남양주갑) 의원이 0건이다. 혹자는 “법안 대표 발의 실적이 의정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 ‘0건 국회의원’들의 생각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입법 활동을 접어두고 펼쳐야 할 다른 활동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선 고참 의원이라며 거들먹거릴 거면 국회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백발을 휘날리며 의회 도서관을 찾는 정치 선진국의 노(老) 정치인들을 국민은 수없이 봐 왔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의원들이 계파 싸움이나 감투싸움에는 혈기 왕성하게 앞장섰다. ‘한 건 주의’에 매달리며 입법 활동을 손 놓은 의원도 보기 안 좋다. 국회 개원하자마자 ‘성범죄자 허위 폭로’로 말썽을 빚은 의원의 대표 발의 실적이 ‘0’이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3선의 이재창 전 의원이 현역 시절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의원들은 법 만들 생각을 안 하고 폭로하고 정쟁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국회의원이 법을 안 만들면 누가 만드나” 환경처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했고 도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노(老) 정객이다. 10여 년 전에 그가 했던 따끔한 지적은 10년 뒤 지금도 그대로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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