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석(權五石)은 일제 강점기 면서기였다. 해방 후 남로당에 입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경남 창원군 노동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전후, 양민 학살에 가담하는 등 좌익 활동의 죄를 범했다. 살인죄, 살인예비죄가 적용됐다. 폐결핵으로 5년간 가석방되기도 했지만 1961년 재수감됐다. 1971년 마산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그에겐 ‘좌익 활동을 했던 미전향 장기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적어도 기록에 관한 그는 극렬한 좌익 활동가였다. ▶권양숙 여사의 아버지다. 사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출마했다. 선거 초반 그에겐 ‘장인 좌익 활동’이란 딱지가 붙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은 느긋해했다. ‘노무현이 후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후보가 된다 해도 한 방이면 끝난다’라고 했다. 상대편만 이런 게 아니다. 당내 경선 후보들도 노무현을 제압할 무기로 이 카드를 움켜쥐고 있었다. 결국, 이인제 후보가 터뜨렸다. ‘노무현=필패’라는 논리로 공격했다. ▶반전은 노무현의 입에서 나왔다. “저의 장인은 좌익활동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걸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다는 겁니까. 그러면 저는 후보 안 할랍니다.” 노 후보에 씌워졌던 ‘적색 콤플렉스’는 이 한 마디로 끝났다. 그 후 노 후보의 장인 문제는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때, 당선 때, 퇴임 때 장인 묘지를 들렀다. 하지만, 이를 시비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송민순 회고록 파문이 꽤나 길어진다. 송 전 장관이 “북한의 의견을 듣고 UN 인권 결의안에 기권했다”고 술회한 대목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눈길이 모아진다. 그런데 문 전 대표의 답변이 애매하다. 처음에는 “박근혜 정부가 배워야 할 대화 정부의 모습”이라고 답했다. 계속 상황이 이어지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때를 만난 듯 몰아세우고 있다. 국기문란 등의 격한 단어까지 동원한다. 국정 조사, 검찰 조사까지 들고 나왔다. ▶‘놀잇감을 뺏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장난을 못하게 하려면 놀잇감을 빼앗아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 나를 끊임 없이 흔들어 댄다면 그 놀잇감을 빼앗는 게 상책이다. 그 방법은 솔직함과 당당함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랑하는 아내를…”이란 말로 상대들의 놀잇감을 빼앗았다. 문 전 대표에게 지금 필요한 돌파구다. ‘그때는 남북 관계도 중요했다. 지금보다 대화도 자유로웠다. 의견을 물어볼 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뭐가 잘못됐나.’ 이렇게 말할 순 없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안 될 별스런 연유라도 있는 것인가. 작은 일에서 보게 되는 노무현과 문재인의 차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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