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즈니스·학술 싱크탱크… 대륙공략 로드맵 제시”
인천시가 한중 FTA 서명 1주년을 맞아 한중 미래전략과 신교류비즈니스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고자 추진해 온 새로운 형태의 포럼이다.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과 함께 이 포럼의 초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송희연(77) 인차이나포럼 공동대표를 만났다.그는 송도국제도시에 글로벌캠퍼스를 설립했고, 인천대 동북아통상국제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전 KDI원장, 해운산업연구원장을 지낸 그의 야심찬 계획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Q 인차이나포럼 공동대표 취임 소감은
A 우리는 성장 트렌드가 완전히 탈바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을 추격하기만 한 캐치업(catch up) 전략에서 퍼스트 러너(first runner)로 변모해야 한다.
동북아통상에 있어서도 퍼스트 러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차이나포럼은 한중 FTA 시범도시로 선정된 인천에서 ‘인천 안의 중국시대‘라는 비전 실현을 위해 시와 대학이 주도한 포럼이다.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과 함께 이 포럼의 초대 공동대표를 맡게돼 영광이다. 송도국제도시에 글로벌캠퍼스를 처음 추진하던 12년 전 처럼 창의적 마인드로 다가가고 싶다. 젊은 시절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창립과정에 참여했던 열정을 이 포럼에 던져 넣고 싶다. 지역경제인들과 함께 간절한, 간곡한 마음으로 ‘혼’을 실어 일을 추진하고자 한다.
Q 창립식과 더불어 어떤 학술교류와 비즈니스가 진행되고 있는가
A 인천시는 대(對)중국 경제·문화·관광·교육분야 교류에서 비즈니스·학술의 싱크탱크 역할과 ‘인천 안의 중국시대‘라는 비전 실현을 위해 지난 6월 13일 송도컨벤시아에서 ‘인차이나 포럼(INCHINA FORUM·ICF)‘ 창립식을 갖고 포럼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날 창립식에는 유정복 시장을 비롯, 최성을 인천대 총장,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과 포럼위원, 각계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ICF의 장도를 축하했다.
인차이나 포럼(ICF)은 인천시가 한·중 FTA 서명 1주년을 맞아 한·중 미래전략과 신교류·비즈니스 모델을 최초로 제시하고 공론화 하고자 추진해 온 새로운 형태의 포럼이다. 포럼은 인천시장을 비롯한 고문단, 경제부시장을 포함한 자문단, 운영위원회, 4개의 분과위원회(학술연구, 인문교류, 투자·무역, 관광서비스)와 특별위원회(중국인 또는 중국내 한국인) 등 2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인차이나 포럼은 대중국 경제, 관광의 싱크탱크 기능은 물론, 한·중 교류비즈니스 학술포럼과 인문교류 개최(매년), 한·중 비즈니스 교류전 개최, 비즈니스 강좌와 인차이나 창(계간지) 발행, 인천내 대중국 교류 비즈니스 추진주체간 사무국 등을 운영키로 했다.
포럼 창립식에 이어 국내 및 중국 기관·단체·기업을 대상으로 한중 무역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창립 사흘간 컨벤시아 전시장에서 인천홍보관 개항과 인천 섬, 중국관, 한·중 이슈산업관 헬스&뷰티, 식품, IT, 물류, 해양레저 등 산업전시회를 열었다.
이와함께 ‘한·중 교류비즈니스의 지속발전을 위한 신모델과 전략’이란 주제로 3개의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주제는 개항과 FTA, 그 140년 사이, 한·중 물류협력의 현황과 전망, 산·학·관 협력모델 창출 등 이다.
6월에 입학한 차이나 BIZ-COOL(중국 CEO 과정) 제1기에 이어, 9월 22일부터 제2기 교육을 시작했다.차이나 비즈쿨(CHINA BIZ-COOL) 2기 중국CEO과정 4주차 강의는 10월 13일 열렸다. 이날은 신동원 네오위즈 차이나 법인장의 ‘중국의 인터넷+ 및 제조혁명, 그리고 O2O’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신 법인장은 “중국의 ‘인터넷+@’ 정책은 산업구조 혁신 및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제조업과 융합되어 기술집약형 스마트 산업으로 발전을 통하여 중국이 제조대국에서 제조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인터넷과 산업을 접목시킨 방향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했다.
Q 최종적으로 포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A 포럼이 존재하는 이유, 대원칙은 ‘현장상담’과 ‘기업이윤 창출’이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도 자연히 이뤄진다.
포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기업의 현장상담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포럼은 서포터며 주인공선수는 기업인 것이다.
최근 소비재서비스산업. 뷰티교육 등 문화상품 등의 상담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차이나포럼은 이러한 분야에 더욱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중소기업의 무역상담지원 기관은 KOTRA, 상공회의소,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다양하다. 제각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차이나포럼은 이들 중소기업 관련기관들의 역할과 일부 중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와 대학이 중심이 되어 대(對)중국 경제·문화·관광·교육분야 교류에서 비즈니스·학술의 싱크탱크 역할을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차별성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본다.
Q 인천광역시와 웨이하이(威海)는 지난해 한중 FTA 경제협력시범지구로 함께 지정됐다. 인차이나포럼은 양국의 기업들에게 어떤 시스템을 제공할 것인가.
A 인천은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이란 특징을 가진 도시로서, 이를 최대로 활용한 다차원적인 대(對)중국 교류·비즈니스 협력모델의 창출은 향후 인천이 짊어져야 할 책무이자 권리다.
특히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중국의 웨이하이(威海)와 함께 한중 FTA 경제협력시범지구로 지정된 것은 인천의 대(對)중국 교류협력이 현실적 과제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중 FTA 발효를 기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한중관계에서 인천이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 교류·비즈니스에 있어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리드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인차이나포럼이 바로 그 역할을 자임한다. 민·관·산·학이 일체가 된 통합적이고 상설적인 협의체로서 인차이나포럼은 인천을 창구로 한 한중 교류·비즈니스 플랫폼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분야별 최신 정보를 수집·공유하고 교류·비즈니스가 실질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하겠다. 나아가 그동안 분산 추진되어 왔던 인천의 대(對)중국 교류·비즈니스 전반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복합적 기능의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Q 송희연 대표는 1970~199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시절에 기억에 남는 일은
A 1971년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번영을 향한 경제 설계’를 하자는 김만제 KDI 초대원장의 권유로 연구원 및 후일 원장으로 근무했다. 또한 1984년 해운산업연구원 창립과 함께 초대 원장을 지냈다.
KDI는 우리나라 경제전반에 관한 정책과제를 현실적·체계적으로 연구하고 5개년 개발계획 수립 및 정책 입안에 도움을 줄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1971년 3월에 설립되었다. KDI 연구진은 5개년 개발계획 작성 뿐 아니라 경제기획원 주관의 3개년 연동계획과 경제운영계획의 작성에도 적극 참여했다.
경제현안에 대한 정책 수립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단기과제 연구도 수행했으며, 이에 관한 토론과 협의가 이루어지도록 정책협의회를 수시로 개최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부설 국제개발연구소(HIID: 현 Center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와 공동으로, 해방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 동안의 경제·사회 발전을 분석·연구하여 국영문 각각 10권에 달하는 ‘한국 경제·사회의 근대화 과정 연구’ 총서를 발간했다.
KDI시절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1972년 당시 10년 후 국내의 철강소비 규모를 예측해 냈던 일이다. 1972년 100만톤 수준이었던 것을 “10년 후엔 연간 1천300만톤의 철강소비가 이뤄질 것”으로 거의 정확히 전망했다. 당시 박태준 포철회장 요청으로 포철 임직원과 철강협회 관계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해운산업연구원장 시절엔 위해~인천 직항로를 개설했다. 국내 컨테이너 물량 중장기 기존예측치(연간 300만톤)을 두배이상 700만톤으로 크게 확대했다. 정부는 증가된 예측치를 기준으로 급속히 늘어나는 1990년대의 컨테이너 물동량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Q 인천대에 동북아통상국제대학, 송도신도시에 글로벌캠퍼스를 건립했는데 무엇에 역점을 두고 대학설립을 추진했는가
A 해운산업연구원장을 퇴임하면서 1997년 인천대에 동북아통상국제대학 학부과정(정원 50명)을 설립을 추진했다. 2004년 까지 초대학장을 지냈다. 대학설립 비용은 인천시와 교육부, 정치계, 기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학생들은 4년 전액 장학금과 1년간 해외유학(등록금 전액지원) 혜택을 입으며 동북아 통상의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캠퍼스는 인천대 동북아통상국제대학을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착안했다. 국내에 세계유수의 대학이 들어와 국내대학들과 교류ㆍ경쟁한다면 한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4년 인천대를 퇴임한 이후 6년간의 노력끝에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등 3개 대학과의 MOU가 맺어지고 나서 정부로부터 1조600억원에 달하는 대학설립 연차별 계획과 자금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Q 젊은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A 1964년 25세 미국유학 시절, 나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셨던 미국의 은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제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그는 “창의적인 생각(Criative thought)은 깊은 생각(Deep thought)으로부터 나온다” 고 지도해 주셨다. 우리나라는 퍼스터 러너(first runner)로 변모하기 위해선 창의적인 생각을 가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
김신호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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