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공직관은 이랬다. 자연재해를 실정(失政)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라고 여겼다. 역병이 돌면 반찬을 줄이는 감선(減膳)과 술을 끊는 철주(撤酒)로 근신했다. 태조 이성계는 15차례 감선과 9차례의 철주를 했다. 1518년 5월, 하루에 세 차례나 지진이 났다. 중종이 “사람을 쓰는 데 잘못이 있을까 항상 두려워하는데도 재변이 이러하니 더욱 두렵다”며 스스로 자책했다. 이게 500년 왕조를 지탱한 ‘덕치(德治’다-. ▶-하물며 세월호 사건은 인간이 빚은 재앙이다. 규정을 넘는 화물을 실었다. 항로를 벗어난 곳으로 갔다… 정부의 책임을 말하는 것을 정치적 의도라 하고, 담당 장관의 경질을 말하는 것을 마녀사냥이라고 하면 안 된다. 애들 죽어가는 배에 들어가 밧줄 묶는 데 6일씩 걸린 정부를 탓하는 게 정치적인가. 죽음의 탈출이 이어지는 순간에 경찰 졸업식에서 파이팅하며 사진 찍은 장관을 탓하는 마녀사냥인가. 틀림없는 그네들 책임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가 사달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 이 화두가 문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도덕이라면 법은 그 도덕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국가의 책임이 ‘법과 원칙’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고 중한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 ‘법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안전해 질 수 없고, ‘원칙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상 2014년 4월24일자 김종구 칼럼 중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는 오랜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화두였다. 위기와 갈등 때마다 이 화두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 화두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해석이 따라붙는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와 ‘법과 원칙만 지킨다’다. 후자로 결론지어진다면 대단히 위험해진다. 책임정치가 실종되는 논리적 구실이 된다. 법의 영역보다 훨씬 넓은 것이 도덕의 영역이다. 그 큰 도덕의 영역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해방구로 남게 된다. ▶지금 그런 상황이 왔다. 최순실은 구속됐다. 10여 개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국민은 죄명에 관심 없다. 실정법을 벗어난 부도덕의 영역에 더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을 좌지우지한 부도덕, 국민 위에 군림하며 거들먹거린 부도덕, 그리고 사교(私敎)와 국정을 혼란시킨 부도덕이다. 모두 실정법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문제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는 ‘법과 원칙’의 밖에 있는 ‘도덕’의 영역에서 초래된 셈이다. 2년 전 칼럼의 제목은 ‘법과 원칙에 따라- 그 함정’이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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