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1799년(정조 23년) 서쪽에 축만제(祝萬堤)를 축조했다. 지금은 ‘서호’로 더 많이 불린다. 화성 서쪽에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중국 항저우의 ‘서호(西湖)’만큼 아름답고 넓은 호수라는 의미다.
만석거와 만년제에 이어 축조된 축만제는 만석(萬石)의 꿈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졌다. 본래 축만제둔(祝萬堤屯ㆍ서둔)을 위한 관개시설로 조성된 것으로 정조가 내탕금 3만냥을 들여 만들었다. 축만제는 문헌에 보면 제방 길이가 1천246척(尺),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수문 2개로 돼있다. 규모가 무척 커 축만제를 통해 농업용수 혜택을 받은 전답이 232석락(石落, 섬지기)에 이른다고 한다.
축만제는 잉어가 유명해 약용으로 궁중에 진상됐다. 서호에 비치는 낙조(西湖落潮)는 수원팔경 중 하나로 꼽혔다. 호수 남쪽에는 1831년 건립된 풍광이 아름다운 항미정이 있다. 축만제 역시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축만제는 1906년 일제가 농사시험장을 설치하면서 최근까지 농촌진흥청이 관리했고, 시험답을 비롯한 인근 농지의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됐다. 수원이 농업기술의 중심지가 돼왔던 것도 축만제와 무관치 않다.
축만제가 국제기구인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로부터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인정받았다. 8일 태국에서 열리는 ICID 67차 집행위원회 발표만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관개시설물 유산은 처음이다. ICID가 축만제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가뭄에 대비한 구휼 대책과 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식량과 재원을 제공하는 등 백성의 식량 생산과 생계에 기여했고, 화성이라는 신도시 건설의 하나로 조성한다는 아이디어가 혁신적이었고, 항미정 건립으로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단일 목적을 넘어 조선후기 선비들의 풍류와 전통을 즐기는 장소가 됐다’는 역사문화적인 특징 때문이다.
축만제가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돼 자랑스럽고 기쁘다.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에 지정돼 더 의미있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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