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속의 닭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닭장 속에서 사육당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을 모아 스스로 닭장을 벗어나는 것, ‘치킨 런’이다. 200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치킨 런’은 영국의 한 닭 농장을 배경으로 닭들이 잡아먹히기 전에 탈주를 시도하는 이야기다.
한국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연구해 온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017년 키워드로 ‘치킨 런’(CHICKEN RUN)을 제시했다. 닭 띠 해인 내년 정유년(丁酉年) 키워드로 ‘치킨 런’을 선정한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든 날아서 탈출하려는 닭들처럼 한국 경제도 위기에서 벗어나 비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치킨 런’은 10개 소비트렌드의 영문 앞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10개 트렌드는 △욜로 라이프(C’mon, YOLO) △새로운 B+ 프리미엄(Heading to B+ Premium) △나는 픽미세대(I am the Pick-me Generation) △캄테크(Calm-Tech, Felt but not seen) △영업의 시대가 온다(Key to success: Sales) △내멋대로 1코노미(Era of ‘Aloners’) △버려야 산다, 바이바이 센세이션(No Give up, no live up) △소비자가 만드는 수요중심시장(Rebuilding Consumertopia) △경험 is 뭔들(User Experience Matters) △각자도생의 시대(No one backs you up) 등이다.
이 가운데 주목하는 트렌드는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의미의 ‘각자도생의 시대’다.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각자도생을 얘기한다. 생존배낭은 각자도생의 대표적 상품이다. 믿을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현재 지향적인 소비생활을 뜻하는 ‘욜로 라이프’로 이어지고 있다. ‘욜로(YOLO)’는 한 번뿐인 인생을 뜻하는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용어로 미래보다는 현재 느끼는 ‘즉시적 행복’을 중요시한다.
김 교수는 한국 경제를 ‘엔진이 고장 난 조각배’에 비유하며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는데 선장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야말로 치킨 런이 필요한데 결코 쉽지 않다.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겨우 탈출할 수 있을까 말까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이 없다면 치킨 런은 없을 테니까.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