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주말에 '비누만들기' 이유는…'자봉 스펙쌓기'

자원봉사점수가 승진심사 가점 반영돼 너도나도 봉사 나서
요양원 등 순수의미 봉사 퇴색·편법 행위까지…내부 비판 많아

경기도 A시 6급 공무원 김 모 씨는 다음 달 모 기관에서 주최하는 비누 만들기에 참여할 계획이다.

 

재료비 7천 원을 내고 비누를 만들어 제출하면 봉사점수 4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6급이 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김 씨에게 자원봉사점수는 매우 중요하다. 승진심사 시 가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속한 지자체는 5급 이하 일반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상·하반기 근무성적평정 시 자격증, 외국어 능력자, 기관표창, 규제개선, 격무부서 근무, 청렴 우수, 자원봉사 등 분야에서 우수공무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이 가운데 자원봉사는 승진을 앞둔 공무원들의 승진 스펙 쌓기 필수코스로 여겨진다.

 

자원봉사시간이 20∼40시간은 0.2점, 40∼60시간은 0.4점, 60∼80시간은 0.6점, 80∼100시간은 0.8점, 100시간 이상은 1.0점이다.

 

별것 아닌 점수로 보이지만 0.6점은 대통령 표창 장려, 0.8점은 우수, 1.0점은 최우수상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점수다.

 

30억∼100억 원 미만의 투자유치를 해야 1점의 가점을 챙길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방법에 비해 자원봉사점수는 자기가 시간을 내서 노력하면 인사가점을 얻을 수 있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공무원이 많다.

 

부서마다 자원봉사팀을 만들기도 하고, 개인이 자원봉사 수요처를 찾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한다.

 

김씨가 속한 A시에서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자원봉사에 참여한 공무원은 150명이 넘는다.

 

6급 이하 공무원 2천200여 명의 7%에 해당한다. 100시간 이상 자원봉사점수를 받아 1.0점의 가점을 받은 공무원도 40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순수한 의미의 자원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승진 스펙을 쌓기 위한 편법 자원봉사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A시의 다른 6급 공무원 이모씨는 "공무원이 평일 야간에는 자원봉사를 할 만한 시간이 없어 주로 주말을 이용해야 하는데 100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했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복지시설 등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다른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사점수에 목을 맨 동료 공무원 중에서는 인형을 만들려고 아내에게 뜨개질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30분간 교육을 받고 나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면 봉사점수로 인정하는 곳도 있다"면서 "이렇게 해서 가점을 받아 승진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는 게 문제고, 이런 현상이 다른 지자체에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인을 포함해 공무원들이 자원봉사점수를 인정받으려면 시군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 수요처가 신청한 봉사내용을 찾아 신청해 일정한 시간 봉사를 하면 된다.

 

시군구 자원봉사센터가 봉사사진과 자료 등 증빙자료를 보고 판단해 활동실적을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www.1365.go.kr)에 올리면 중앙센터가 적합성을 판단해 승인하는 시스템이다.

 

자원봉사센터도 공무원들의 자원봉사 부당행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단속을 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의 관계자는 "지금의 자원봉사관리 포털시스템(1365)이 구축되기 전에는 지역에서 자원봉사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가 없는 것으로안다"면서"그러나 봉사자와 봉사수요처가 완벽하게 짜고 하다면 발견 못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앙자원봉사센터가 상급기관이 아니어서 지역 자원봉사센터를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다.

지금까지 편법 자원봉사 문제에 대해 조사한 적은 없다"며 "돈을 주고 봉사시간을 사는 경우가 의심되면 봉사자와 수요처를 설문 조사해 활동중단이나 권한박탈 등의 조치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도 자원봉사 부당행위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적발하지는 않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2011년 10월 시흥시에 대한 종합감사를 벌여 자원봉사 실적을 부풀린 공무원을 적발한 사례는 한차례 있다.

 

당시 시흥시 공무원으로 구성된 A 봉사모임은 29차례에 걸쳐 지역 내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실제 참여하지 않은 공무원(연인원 654명)에게 1인당 4시간(총 1천970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을 부풀려 자원봉사센터에 보고했다.

 

또 8명의 회원은 자원봉사시간 320시간을 초과 근무시간으로 올려 수당 250여만 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경기도가 봉사모임 회장 등 2명을 징계하고 회원 4명을 훈계 처분했다.

 

경기 수원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지난해부터 자원봉사 점수반영 기준을 낮췄다.

 

30시간 이상은 0.1점, 50시간 이상은 0.2점, 70시간 이상은 0.3점으로 줄여 자원봉사점수가 승진에 큰 작용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전까지는 50시간 이상은 0.3점, 70시간 이상은 0.5점을 줬었다.

 

수원시 관계자는 "공무원이 70시간 이상을 제대로 자원봉사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자원봉사가 인사와 관련해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공정하게 평가하고 관리해 줄 것을 수원시자원봉사센터에도 요청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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