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 인물] 성삼문(1418~1456)

단종 복위 꿈꾸다 눈 감은 ‘충의의 인물’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호는 매죽헌. 사육신의 한 사람이며, 파주 수정봉 서쪽 덕내곡에 서당 터가 있었다. 

1438년 급제, 1447년 문과중시에 장원 후 집현전학사ㆍ수찬 등을 역임했다.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두>를 편찬하고 경연관이 돼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한글의 창제를 위해 정음청에서 정인지ㆍ최항ㆍ박팽년ㆍ신숙주ㆍ강희안ㆍ이개 등과 함께 요동에 유배돼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황찬에게 13번이나 내왕하면서 음운을 질의하고 다시 명나라에 건너가 음운 연구를 겸하여 교장제도를 연구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케 했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체포돼 거열형을 받았다. 문집으로 <성근보집>이 있다. 파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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