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한령(限韓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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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방영될 때 유시진 대위 역을 맡은 송중기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열광하며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궜다. 

난징에 사는 20세 여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 보는 바람에 급성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처해 중국 정부가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SNS엔 송중기와 연인인 듯 갖가지 합성사진이 올라왔고, 심지어 송중기와의 가짜 ‘혼인증명서’까지 나돌았다. 당시 송중기는 중국의 10억대 CF 제의만 10건 넘게 받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최근 송중기가 출연한 중국 휴대폰 광고 모델이 대만 배우 펑위옌으로 교체됐다. 전지현, 이영애 광고도 사라졌다. ‘한한령(限韓令)’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한류 연예인의 드라마·예능 출연과 중국 현지 공연을 제한하고 한국산 제품의 TV 광고도 금지한다’는 내용의 한한령을 내린 것이다. 이후 아이돌 스타의 중국 공연이 취소됐고, 한국음악 방송도 중단됐다. 한국 TV 드라마도 중국 방송에서 사라졌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9월 한국산 설탕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사, 10월 한국산 폴리아세탈에 대한 반(反)덤핑 조사, 11월 한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반덤핑 재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8월까지 한국 대상 반덤핑·세이프가드 조사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사드 관련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더니 지난달부터는 한류 연예인과 한국음악 방송 금지 조치에 나섰다. 중국 당국은 주요 도시 홈쇼핑 업체에 ‘한국 제품 편성을 줄이고 방송에 한국인 모델을 쓰면 안 된다’는 지시도 내렸다. 사실상 홈쇼핑에서 한국 제품 판매 방송을 중단하라는 얘기다.

 

중국은 롯데그룹에 대해선 전 사업장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세무·소방·위생 조사를 벌였다. 이례적인 조치로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데 따른 보복 성격이 짙어 보인다. 중국의 이런저런 규제 조치로 한국기업의 활동이 위축돼 피해가 가시화 되고 있다.

 

중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한ㆍ미 군 당국의 사드 배치에 반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업과 연예인 등 사드와 무관한 약자를 타깃으로 분풀이하는 보복은 치졸하다. 정부는 중국의 부당한 압력에 항의하면서, 한편으론 문화ㆍ경제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대중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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