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하늘’만 쳐다보는 꼴이다. AI 발생 초기, 방역 당국은 철새 탓에 매달렸다. AI 감염 및 전파의 매개가 철새라는 이유였다.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철새라는 매개 특성상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수시로 흘렸다. 그러던 당국의 입에서 이번에는 ‘폭설 효과’ 얘기가 나온다. AI 바이러스가 높은 습도에 약해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발병과 감염 전파에 이어 치유에서도 반복되는 ‘하늘’ 얘기다.
틀린 이론은 아니다. AI 바이러스는 춥고 건조한 날씨에서 활성도가 높아진다. 최근 들어 경기도에서 발생했던 AI는 모두 5차례다. 2011년 1월8일부터 5월 16일, 2014년 1월 28일부터 6월 24일, 2015년 1월13일부터 5월 22일, 올 3월 23일부터 4월 5일, 그리고 지난 20일부터 현재까지다. 이중 지난 3월에 시작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4번이 모두 춥고 건조한 시기에 발생했다가 고온다습한 시기에 종식됐다.
적설량과 AI의 연관성도 통계로 확인된다. 최근 6년간 수원시 서둔동 기준 1~3월 누적적설량은 2011년 0㎝, 2012년 9.7㎝, 2013년 22.8㎝, 2014년 10.5㎝, 2015년 4.2㎝, 올해 11.0㎝다. AI가 발생한 2011년, 2014년, 2015년 적설량이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다 보니 방역 당국도 폭설 주의보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피해가 가장 큰 포천시에 내려진 폭설주의보를 낭보로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듣는 축산농민들의 속은 답답하다.
이번 AI 피해는 이미 사상 최악이다. 전국에서 1천2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경기도는 25일 동안 800만 마리가 매립됐다. 이천은 491만 마리 가운데 220만 마리, 포천은 1천100만 마리 가운데 22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가금류 농가의 초토화다. 그 기간 방역은 곳곳에서 구멍을 드러냈다. 자격 없는 방역사를 채용한 곳도 있었고, 감염된 가금류가 버젓이 유통되기도 했다. 이동 제한도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래놓고 기껏 흘리는 말이 ‘폭설이 해결해 줄 것이다’다. 더구나 폭설 때문에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이 죽어나가고 채솟값이 급등하면서 농민과 도시 서민들이 받는 고통이 크다. 방역 당국이 이런 현실을 안다면 할 소리가 아니다. 이번 AI 참사는 인재(人災)가 명백하다. 당국의 방역 정책 실패가 원인이다. 발생 한 달여, 살처분 1천만 마리를 넘어서야 정부 대책반이 꾸려진 나라다. 철새 탓, 폭설 효과는 입에도 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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