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설원기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예술 양극화 해소… 도민 행복지수 높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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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의 출현은 조직원들에게 기대와 불안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충돌하게 만든다. 

‘사전지식’ 없는 인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9월12일 취임한 경기문화재단 설원기 대표이사가 딱 그랬다. 그는 미국 벨로이트 대학교와 프랫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덕성여대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학과장, 한국예술영재교육 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예술가이자 교수로는 널리 알려졌지만, 경기도민은 물론 도내 문화예술행정지원분야에서도 다소 낯선 인물이었다. 이에 오는 20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지금까지 재단 직원 사이에서 설 대표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60대임에도 오토바이 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회의 때마다 말은 아끼고 표정변화도 없어 속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 미국 유학에 순수 예술 활동과 국내 최고 예술 대학에서의 활동 등을 놓고 ‘엘리트주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소탈한 행동으로 ‘옆집 아저씨’ 등 엇갈리는 별칭들을 얻었다. 

그는 진정 어떠한 리더인가, 어떻게 전국 최초의 문화재단을 이끌 것인가. 설대표와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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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청문회와 행정사무감사, 신년 사업 계획 및 예산 수립 등 취임 100일 동안 숨가쁘게 달린 듯 하다.

A 어느새 100일이다.(웃음) 경기문화재단에 취임 하기 전에는 예술가로서 재단이 운영 중인 박물관과 미술관에 주목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시 기관을 많이 운영하기 때문에 그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 직접 와서 부딪혀 보니 훨씬 폭넓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특히 순수 예술 진흥과 지원에만 집중돼 있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훨씬 더 많은 사업이 생활문화 확산을 위해 이뤄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생활문화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Q 전임 대표가 임기를 모두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그만두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직원들이 크게 위축돼 있었고, 더욱이 행정사무감사에서는 경기도박물관의 특별전 <어린왕자>가 도마 위에 올라 집중 질타를 받았다. 설 대표가 재단에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실제 그러한가.

A 실망보다, 당초 예상치 못한 일들에 부딪혔다. 국립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여서 재단에 취임해도 휴직 또는 겸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재단이 민간 기관이어서 그럴 수 없었다. 학교 사퇴를 결정하고 취임했는데 운영 형태는 공기관에 가깝다. 경기도의 출연금을 투입, 도 단위 공공 뮤지엄들을 운영하는 만큼 공기관적 성격이 맞고 당연히 그런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임기 2년은 너무 짧다. 시작하면 끝이 날 것 같아, 이후 신임 대표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고 급한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개인적인 욕심보다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고 기반 다지는 일을 하려 한다.

 

Q 이른바 ‘엘리트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에 ‘순수 예술 지원 강화’로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A 예술하는 사람이니까 엘리트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재단 대표 혹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장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 우리나라가 행복지수 낮은 나라로 꼽힌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이야기를 할 때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인가를 예전부터 고민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생활이나 예술은 건강한 구조가 아니다. 삼각형과 역삼각형이 위아래로 교차하며 마주보는, 모래시계와 같은 형태다. 

위 아래는 많고 중간은 없는, 빈부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정상적으로 가려면 두 삼각형의 교차 지점이 넓어져 다이아몬드 형태가 돼야 한다. 엘리트예술을 즐기는 사람도 문화예술에 관심없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일단 다수가 대중문화이든 고급문화이든 양쪽을 오가며 즐길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만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이다. 이를 위해 재단은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대중문화부터 문화의 가치를 느끼면서 그 만족감과 관심이 다른 영역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경기도는 지리적 특성과 문화예술 기반 시설 차이 등으로 사각지대와 소외계층이 많다. 고급문화와 그것을 즐기는 여유있는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며 그 수준을 유지한다. 때문에 공공기관인 재단은 소외계층에 문화의 가치를 전하고 확산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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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17년 ‘설원기표’ 재단 역점사업들의 방향성으로 이해된다.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A 예산이나 인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재단은 수많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다양한 이벤트, 공연, 전시를 해왔는데 그것을 ‘재활용’하지 못했다. 그 모든 콘텐츠를 사이버 콘텐츠로 재구성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배포해야 한다. 

소요예산도 절감하면서 도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곧 남한산성 관련 영화가 개봉할텐데 노인, 장애인, 어린이 시설 등에서 이 같은 대중영화를 보여주면서 역사 강의나 교육 프로그램을 결합해 운영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재단의 현 홈페이지를 개선해 20분 분량의 강연을 제공하는 등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굿모닝 하우스에서 진행 중인 토크콘서트처럼 지적인 이벤트도 많은데 이러한 것을 기획, 영상으로 배포하면 된다. 도민이 자주 들러 얻어갈 것이 많은 사이트를 만들겠다.

 

Q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 공공 뮤지엄 운영 및 지원 방향도 궁금하다.

A 도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접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각 기관(뮤지엄)들이 도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선진국은 관람객 관리가 체계적으로 정보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기업 역시 물건 하나를 구매해도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확보하는 회원 관리가 철저하다. 뮤지엄도 당연히 관람객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미술관에 들른 관람객이 전곡선사박물관에 갔을 때 직원이 “경기도미술관을 다녀오셨군요. 경기도 공공 뮤지엄에 두 번째 방문하시면 기념품을 드립니다.”처럼 기분 좋은 소소한 이벤트가 이뤄져야 한다. 정보화가 기본이다. 수시로 관람객들의 문화향유 취향을 분석해서 재단을 통해 이뤄지는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문자를 발송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 

또 휴대폰으로 특정 앱을 다운받아 놓은 관람객은 어떤 기관에서든 그것을 통해 전시 안내를 받을 수 있고, 각 기관 입구에서는 인터랙티브(상호 작용) 가능한 키오스크를 통해 도내 문화예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보화 작업이 재단이 미래로 향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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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림 그릴 시간도 없어 보인다. 비록 100일이지만,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A 적어도 2년 동안 작업은 보류다. 주말에도 김장 담그기나 선사박물관 음악회 등 참석해야 하는 재단 행사가 많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탈을 즐긴다.

재단 대표로 온 이유다. 후회없이 좋다. 날이 풀리면 선사박물관 행사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 한다.(웃음) 학교에서 정년 퇴임하면 작업에 집중하고 오토바이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재단 대표로 열심히 일하고 그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포커페이스라고 부르는 사실을 알고 있나.

A 몰랐다. 나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학생들은 내 얼굴 표정만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고 했다. 아마 낯선 상태에서 처음 만나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최소한 직원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의미있게 느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쓸데없는 일은 덜어주고, 즐거운 직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

 

류설아기자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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