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앱까지 파고든 ‘은밀한 거래’
별다른 인증절차 없이 쉽게 가입 익명성 보장돼 일반인들로 퍼져
‘얼음공주님. 역 인근 OO모텔 204호로 오세요.’
최근 의정부역 근처에 매복해 있던 경기북부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대장 하재식) 소속 대원이 랜덤채팅 앱을 통해 받은 대화 내용이다. ‘공주’라고 쓰인 닉네임에는 예쁘고 유약한 모습의 공주 캐릭터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애교 섞인 채팅용어를 뒤섞어가며 ‘금방 갈게요’라고 답장을 보낸 이는 정작 키 180㎝·몸무게 90㎏의 거구 체형,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얼굴을 수북이 감싼 수염, 험상궂게 생긴 인상 등을 가진 베테랑 형사였다.
곰같이 투박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부술듯한 기세로 꾹꾹 눌러가며 대화를 한참 주고받더니 이윽고 OO모텔로 향했다. 미리 섭외한 한 여성이 204호 벨을 누른 뒤 “얼음공주입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주변에 대기하던 형사들이 달려들어 마약 전과자 C씨(34)를 붙잡았다. 모텔 안에는 다량의 필로폰이 발견됐다.
이처럼 ‘즐톡’, ‘앙톡’ 등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랜덤채팅 앱들이 마약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에 경찰들도 마약사범을 잡는 도구로 사용하며 이들을 낚는 것이 최근 수사기법이다.
20일 경찰과 함께 랜덤채팅 앱을 켜보니 ‘술 한잔하자, 얼음’, ‘작대기, 주사기’, ‘한칸, 두칸’이란 단어들이 쓰인 닉네임이나 채팅방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서 술과 얼음은 필로폰, 작대기와 주사기는 필로폰이 담긴 주사기, 한칸 두칸은 주사기에 그려진 눈금 수 등을 각각 의미하는 마약 은어다.
해당 채팅 방에서는 ‘그램(g)당 100만 원’ 식 등의 갖가지 마약 판매 흥정이 벌어졌다. 신원 확인을 위해 증명할 사진 등을 요구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마약 판매자들은 랜덤채팅앱을 통해 투약자를 모집하거나 판매하는 주된 창구로 쓴다.
이처럼 랜덤채팅 앱이 마약거래가 활발할 수 있던 배경에는 별다른 인증절차 없이 간단하게 가입 및 접속을 할 수 있고, 카카오톡처럼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데다 위치추적까지 되지 않아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돼서다. 이에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마약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구조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익명성이 보장된 앱들을 통해 마약들이 손쉽게 일반인들로 퍼져 나가는 실정”이라며 “사법기관의 끊임없는 감시와 함께 해당 앱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정부=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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