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군주민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1180572_1087329_1027.jpg
쌀쌀한 날씨에도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엔 60만 국민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이날 촛불집회엔 산타 복장이나 루돌프 머리띠를 한 가족이나 연인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등장했다. 촛불 든 산타와 함께 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9차 촛불집회는 축제같았다.

이날 경찰 차벽에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 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군주민수’는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으로 ‘순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군자주야 서인자수야)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민심과 통하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는 “분노한 국민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재확인하며 박근혜 선장이 지휘하는 배를 흔들고 침몰시키려 한다”며 “박근혜 정권의 행로와 결말은 유신정권의 역사적 성격과 한계를 계승하려는 욕심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교수신문은 매년 한해를 마감하며 교수 추천을 받아 설문을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2위에는 ‘逆天者亡(역천자망)’이 뽑혔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다. 3위는 ‘露積成海(노적성해)’로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모두 세태를 적확히 반영한 성어들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을 밝혀 들고, 박 대통령 탄핵안까지 가결된 상황을 빗대고 있다.

교수신문은 지난해엔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을 빚댔다. 2013년 박 대통령 재임 첫 1년의 평가는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를 토대로 보면, 박 대통령 재임 4년은 순리를 거스르고, 진실이 왜곡되고, 그래서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웠다. 결국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의 물결은 지금 거대한 강물을 이뤘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