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새해를 맞아, 새 시대를 갈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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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의 첫 장, 그러니까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족보로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는 구절을 첫머리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이런 투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에 이르기까지 1800년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낳고…낳고…낳는” 끝없는 삶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이 얽혀 마침내 ‘새 시대’ 곧 ‘예수 시대’가 열린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숱한 사람들이 종횡으로 얽혀 서로 관계를 맺고, 앞선 사람들의 삶에 잇대어 새로운 삶을 더해 온 기나긴 역사의 결실이었다. 예수 시대를 알리는 족보에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때로는 돕고 때로는 다투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의미를 지향하며 소망을 키워 온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조(始祖) 아브라함이 안정된 삶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건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사가 시작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족보는 과거와 단절하고 관계를 혁신하는 것, 그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밝혀 준다.

 

어디 그뿐인가. 족보에는 아브라함 가문과 다윗 왕조의 남자들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불의를 저질렀을 때, 새롭게 그 가문과 민족을 일으킨 사람들, 통상의 경우라면 결코 족보에 오를 수 없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나온다. 그 가문과 민족이 무너져 갈 때, 불가사의하게도 새로운 피가 수혈됨으로써 예수 시대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압권은 족보의 마지막 대목일 테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마태복음 1장 16절).” 요셉이 마리아로부터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볼품없는 갈릴리의 여인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단다. 그마저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아무런 육체관계도 없이, ‘하느님의 성령(聖靈)’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아니잖은가. 말 그대로 단절이고 절연이다!

 

하여 예수 시대는 더이상 과거에, 옛 언약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 시대는 역사 안으로 직접 들어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온갖 굴레와 인습들, 바로 그 낡은 과거를 송두리째 끊어내시는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므로 단절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불의한 질서를 뒤집고 하늘의 뜻(天命)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행동이며, 옛 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길이자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변화의 시작이고 성장과 성취의 과정이다. 2017년 새해를 맞아, 낡은 어제와 ‘단절’함으로써 협잡과 불의가 없는 진실하고 정의로운 역사를 맞이하기를,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고 빈다.

 

박규환 숭실대 외래교수·기독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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