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사무친 그리움 ‘비무장지대’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을 향해 가는 여정인데 반해,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사람과 신화 속 동물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 ‘가족 공동체’를 보여주고, <5대 가족>에서는 온 우주가 가족이라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죠.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에서 작가는 비무장지대로 우리를 인도해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어요.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곳에서 동물들은 평화롭지만 사람은 건널 수 없는 강에 서 있는 듯 그리움에 사무치죠.
등장인물은 한 할아버지와 손자예요. 할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이 그리워 전망대를 찾곤 해요.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벗들을 찾는 일은 난망한 일이에요.
그저 망원경은 망원경이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의 가시거리를 보여줄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할아버지에게는 그 전망대와 망원경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닐 거예요. 건널 수 없는 곳에서 그 건너편을 볼 수 있는 자리와 망원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에겐 큰 위안이 되었을 테니까요.
작가는 그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비무장지대를 답사하며 꼼꼼하게 풍경을 스케치했어요.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하며 검게 박혀 있는 가시철조망과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과 그 너머의 숲과 새들을 그렸죠.
작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제 늙고 병든 비무장지대를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철조망을 걷어내고 지뢰를 없애고 끊어진 철도를 다시 이어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야 합니다”라고 말예요. 그의 말에는 간절함이 있어요. 그만큼 분단의 아픔이 크고 깊다는 것을 반증하죠.
이 그림은 이야기가 끝나가는 쪽의 한 장면이에요. 전망대를 내려온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집’으로 향하죠. 그런데 말예요. 자세히 보면, 작가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걸어가는 곳을 환한 여백으로 열어 두었어요. 전봇대를 중심에 두고 왼쪽에 ‘전망대가는길’ 푯말이 있어요.
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지뢰’라 쓴 푯말도 보이네요. 오른쪽을 볼까요? ‘정지’, ‘정지/STOP’, ‘STOP’, ‘위험/DANGER’, ‘비무장지대/출입금지’, ‘멈춤’이라 쓴 푯말들을 몰아 놓았어요. 심지어 철재 바리케이드조차 치워져 있죠. 할아버지와 손자가 가는 길을 막지 않겠다는 듯이.
통일을 향한 작은 발걸음. 할아버지와 손자가 밝게 웃으며 함께 걷는 그 길. 그 길의 끝에 그들의 집이 있고 가족이 있을 거예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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