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보약이다. 일정시간 푹 자야 몸도 정신도 개운하고 하루 일과를 잘 소화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이 보약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 일상에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다 해도 숙면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 숙면은 돈을 지불하고라도 얻고 싶은 가치가 됐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수면산업이 뜨고 있다.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등장했다. 편안한 잠자리와 숙면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니즈(needs)에 맞춰 다양한 수면 용품과 서비스가 기반이 된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초기 수면산업은 침대와 같은 단순 침구류나 불면증을 치료하는 수면제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엔 피트니스밴드와 수면센서, 수면 카페, 블루라이트 안경, 수면질환을 진단하는 수면다원검사 등 상품과 서비스 분야가 다양해졌다. 개인 맞춤 침구 슬립 코디네이터, 슬립 테라피스트, 수면컨설턴트 등도 등장했다.
미국과 일본은 1990년대부터 수면산업이 형성됐다. 미국은 성인 3분의 1이 수면장애에 시달리면서 수면시장 규모가 20조원에 이른다. 일본도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급증해 시장 규모가 6조원에 달한다. 한국도 최근 몇 년 사이 수면산업 규모가 2조원대로 성장했다.
수면산업의 성장은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 환자 증가의 영향을 받는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5년 45만6천여 명으로 최근 5년간 41% 증가했다. 수면장애 관련 진료비도 매년 상승해 2012년 359억6천630만원이던 것이 2014년 463억4천590만원을 기록했다.
‘2014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성인 한국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잠을 가장 적게 자는 나라로 평가된다. 이마저도 얼마나 양질의 잠을 자느냐가 중요하다.
수면장애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스 등을 받아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숙면은커녕 잠들기도 어렵다. 실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층,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지갑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은 잠재적 수면장애 환자다. 나이가 들수록 깊은 잠을 못자는 중ㆍ장년층, 갱년기를 겪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수면장애는 이제 단순한 질병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잠 잘자는 것이 돈 버는 시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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